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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파격적인 출산지원 정책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을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정부도 인구구조 변화가 국가 장래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중장기전략위원회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머지않아 재앙'…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은

전문가들은 23일 현재 추세대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면 머지않아 국가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많은 전문가는 가족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제도로 뒷받침하면서 고령층의 생활 보장을 위해 고용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보육시설 확대 등으로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지 않고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성의 출산율과 경제활동 참가율 모두를 높이려면 보육 문제를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낳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라며 "4대강 사업 등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정책에 투입한 정도의 재원을 저출산 문제에 투입하는 식으로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령층이 빈곤계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소비를 통해 내수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베이비부머들이 곧 대거 은퇴할텐데, 한국은 평생직장에서 나오면 바로 경제적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구조"라며 "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년퇴직한 고령자를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하면 은퇴자의 경제적 안정성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고, 그들의 숙련된 업무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김광석 연구원은 "65세 이상 인구가 최저생계비 수준의 노후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공공 근로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증세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세입감소와 복지지출 증가가 국가 재정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며 조세 부담률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병구 교수도 저출산·고령화가 국가 재정적자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증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세금 부담 능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과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먼저 증세한 뒤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면 중소기업·서민·중산층에게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먼저 겪은 선진국은 어떻게 극복했나

저출산·고령화는 선진국들이 한국에 앞서 직면한 사회 문제다.

일부 국가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결과,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출산율 하락의 위기를 극복 중인 모범적인 국가로 스웨덴, 영국, 프랑스를 꼽았다.

연구원은 이들 국가가 출산율을 끌어올린 비결로 가족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투자,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등을 들었다.

스웨덴은 출산과 육아를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출산휴가는 출산 예정 60일 전부터 480일간 사용 가능하고, 쌍둥이의 경우 180일의 휴가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임신휴가 급여는 월 평균소득의 80% 수준이다.

12세 이하의 아동이 아프면 부모는 120일까지 간병휴가를 쓸 수 있고, 이 기간에는 월 평균소득의 약 77%를 간병급여로 받는다.

아울러 보육의 양성 평등을 위해 출산휴가는 반드시 부모가 나눠서 사용하도록 돼 있어 남성은 의무적으로 2주의 휴가를 써야 한다.

영국은 비공식 양육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12세 미만 아동을 매주 20시간 이상 돌보는 조부모에게 의료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16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근로자에게는 탄력근무를 인정한다.

유급 육아휴직과 모성휴가는 각각 39주에 달한다.

프랑스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슬로건으로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임신에서 출산, 양육, 교육까지 모든 과정에서 현금을 지원한다.

출산 전 3개월부터 출산 후 6개월까지 총 9개월간 유아수당을 지급한다. 출산 후에는 부모의 근무 유형에 따라 영아보육 수당이 주어진다.

경제력과 관계없이 2명 이상의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가정에 '가족수당'이 주어지고, 3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가족보충수당'이 추가로 지급된다.

90% 이상의 프랑스 어린이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립 유치원에서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은 각종 사회보장 급여를 삭감하고 연금 지급 연령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아울러 소비세를 중심으로 조세 부담률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산에 대한 과세도 강화하고 있다.

이혜림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인구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맞아 과거와 같이 소득에 대한 과세만으로는 세수에 한계가 있다"며 "따라서 그동안의 경제성장 성과인 자산에 대한 과세를 확대해 세수 기반을 안정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구성…인구 구조변화 집중논의

한국 정부도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 1차 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 각 부처의 장·차관급 인사와 분야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앞으로 약 1년간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놓고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위원회의 주요 논의사항 가운데 하나는 인구구조 변화다.

1차 회의에서 주제 발표를 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한국의 인구 구조변화는 충격적일 정도로 파급 효과가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한국은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저출산·고령화에 관한 앞으로의 논의 방향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각종 정책을 참고하면 육아휴직 급여 수준을 높이고 신혼부부의 주택자금 대출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대책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아울러 고령층의 근로 기회를 확대하고 퇴직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둘째 또는 셋째 이상 아이에 대한 각종 지원과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