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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를 타고 흐르는 돈, 방향을 찾아야 한다

[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바야흐로 은행에 돈 맡기기 싫은 시대다.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예금 이율이 높은 은행과 금융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정기예금은 1.0%대 후반, 정기적금도 2.0% 이하에 그친다. 전국은행연합회의 금리비교 서비스에 따르면 전국 13개 은행의 저축상품 금리를 비교해 본 결과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모두 경남은행이 각각 1.7% , 2.00% (모두 1개월 기준)로 가장 높은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한국은행이 예상한 2015년의 예상 물가상승률인 1.9보다도 낮은 수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 금리를 하락하도록 유도했다. 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업과 투자자 등 경제 주체들이 돈을 흐르게 하면 경기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의 예상과는 달리 풀린 돈은 금융권에서만 맴돌고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물경제의 상황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동성 함정' 조짐이 보인다.

유동성 함정은 금리가 낮아지더라도 가계와 기업이 돈을 시중에 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일본의 장기불황을 들 수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제로금리'를 고수했음에도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심화되어 투자보단 현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 때문에 다시 디플레이션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경기가 완전히 회복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유동성의 함정은 한 번 빠지면 탈출하기 어려운 것이다.

◎ 은행예금, 이미 저축의 수단이 아니다

시중 금리가 낮아진 것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 (연2.0%) 떨어뜨린 까닭이 크다. 기준금리 하락 후 은행에선 연 1%대의 예금 상품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물가상승률과 세금 등을 고려하면 은행에 예금할 시 오히려 자산가치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금리가 연 1.9%인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에 1억 원을 예치했다면 한 해 이자는 190만 원이 된다. 여기에 이자소득세(15.4%)와 주민세(1.4%)를 빼면 예금주가 실제로 받는 이자는 158만 원 정도다. 결국, 실제 반영되는 이자율은 상품소개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1.58%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정기 예·적금과 양도성예금증서 등을 모두 포함한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달 연 2.16%로, 이미 기준금리에 바싹 다가서 있으며, 제2금융권으로 불리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예금 금리도 대부분 2% 초중반이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을 기준으로 상호금융의 예금 금리는 연 2.37%였고 새마을금고(2.61%), 신용협동조합(2.67%), 상호저축은행(2.76%) 등 순이다.

◎ 금융권 주변에서만 맴도는 돈 … 흘러나갈 길을 뚫어줘야 해

은행권이 기업˙가계에서 받은 총금액은 11월 말 현재 1천75조 원으로 1년 새 66조 원이 불어났다. 전체 예금규모로 봐도 2013년 말보다 6.5%나 늘어났다. 그중 가계의 예금 증가율은 5.5%였으며, 기업(315조원)과 기타 경제주체(231조원)의 예금 증가율은 각각 1.4%, 17.3%였다.

은행의 예금 회전율도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회전율은 3.7회로 전월(3.9회)보다 떨어졌다. 2013년 12월만 해도 4.1회 수준이었지만 작년 내내 3회 수준에 머물렀다. 예금 회전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소비를 위해 예금 인출을 덜 했다는 뜻이다. 돈이 시중에서 도는 속도가 그만큼 느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금융시장에 쌓인 단기 부동자금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단기 부동자금의 잣대로 활용되는 머니마켓펀드(MMF)의 잔고 상승률은 가파르다. MMF 설정액은 지난 29일 현재 98조3천억원으로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년간 설정액이 26조원 가까이 증가했으며, 올해 들어서만 15조9천억원이 집중적으로 몰렸다.

금리 인하의 효과가 나지 않는 가장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커진 데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기와는 달리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맞아 증시와 부동산 시장 등 어디에서도 예전 같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고객들이 어디에 투자해야 수익을 얻을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 방향성을 잃은 자금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자금이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은은 경제학 논리에 의해 국가 경제를 통제하려 했지만, 저금리만으로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관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었다. 경기의 활성화를 위해선 국민들의 얼어붇은 투자∙소비심리를 녹일 수 있는 방향성을 찾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은은 경제 지표상으로만 보이는 유동성을 들이밀며 체감되지 않는 성과를 과시하기보단, 국가 경제가 함정에서 빠져나갈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사다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