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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온라인에 숨어있는 정치세력 (2) - 무기력한 다수

[재경일보 방성식 기자] = 유머 커뮤니티가 유독 정치색이 짙은 이유는 정치가 해학과 풍자와 궁합이 잘 맞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희극인 이주일은 한때 몸담았던 정치판을 떠나며 “여기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만큼 정치는 모순덩어리고 사람들은 그 모순을 비웃으며 보상심리를 충족한다.

인터넷 순위조사 사이트인 랭키닷컴의 유머/재미 카테고리에 분류된 사이트는 총 174개다. 이는 축구나 육아, 자동차 등 복수의 주제를 다루는 사이트를 제외한 것으로, 실제 유머를 다루는 사이트를 모두 포함한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중 1위는 일베, 2위는 오유다. 이 두 사이트는 각각 100만에 가까운 사용자를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5위 이하의 유머 커뮤니티는 몇십만, 몇만 수준으로 사용자가 급감한다.

◎ 정치색이 없는 대다수… 뭉쳐있으면 분열만 일어나

일베와 오유가 소속감이 강하고 사용자들의 참여도 활발한 데 비해,  대부분의 중소 커뮤니티는 고질적인 ‘정전’문제를 겪고 있다. 정전이란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고 사용자들의 반응도 없는 상태로, "아무래도 전기가 끊어져 커뮤니티가 죽은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이 적으며 냉담하다. 사용자끼리의 의사소통이나 참여도 적고 유입경로도 불규칙하다.

일베, 오유에 비하면 콘텐츠 생산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로드 되는 대부분의 자료는 대부분 다른 대형 유머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러 곳의 자료가 섞여들어오다 보니 통일된 정치색이 자리 잡지 못해, 한 가지 자료를 가지고 격렬한 찬성과 반대의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찬양과 비난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일베나 오유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크다.

◎ 무기력과 체념이 만연한 다수집단

하지만 이 집단에도 공유하는 정서는 있다. 그것은 체념과 패배주의다. 랭키닷컴 순위 20위권인 유머 커뮤니티들을 살펴본 결과 정치인을 조롱하는 유머에서 분노의견을 남기면서도 “대한민국은 원래 안되는 나라”,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 “여러분 이민 준비하세요” 등의 체념 어린 자학적 댓글을 남기는 경우가 잦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댓글들도 대화가 아니라 그저 각자 허공에 외치는 한숨일 뿐이었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인 귀족포털에선 2014년 대학생 813명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란 내용의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정치분야에선 국회의원 문재인이 1위를 했다. 하지만 득표율은 14.0%에 불과했다. 뒤를 이은 안철수도 고작 11.8%였으며 그 뒷순위는 10%의 비중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정치란 ‘존경받지 못하는’ 영역인 것이다.

◎ 영웅은 또다른 영웅을 낳기 위해 필요하다

일베와 오유가 홍위병이라면 중소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무기력한 일반인’의 사고를 대변한다. 박세리가 골프에서 성공한 후 한국 골프계는 박인비란 걸출한 선수를 키워냈고, 김연아의 성공 덕에 수많은 피겨 꿈나무가 생겨났다. 영웅의 성공은 또 다른 가능성을 잉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판은 비극만 거듭하고 있으며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정치판에서 영웅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영웅이 될 의지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체념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 작은 커뮤니티들에 사용자들이 계속해서 유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성인자료와 광고 게시판이 그 질문에 대신 답변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