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넴초프 암살.. 21세기에 이루어지는 푸틴 정적 청소

알렉산드로 리트비넨코는 러시아의 전 비밀경찰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런던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귀가자하자마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선 검사 결과 그의 체내에서 유독성 방사능물질인 탈륨이 검출되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여기자를 청부살해했다는 주장을 했고,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 폭파 사건의 배후가 연방보안부 (FSB, KGB의 후신) 임을 폭로하는 책을 펴기도 했다.

인권운동가인 나탈랴 에스테미로바는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당해 몇 시간 뒤 인접 도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체첸의 인권실태를 외부에 알려 '폴리트코프스카야 인권상'을 받기도 한 저널리스트였다. 그녀의 동료였던 안나 폴리토코프스카야 역시 자신의 아파트에서 피살당했다.

변호사인 스타니슬로프 마르켈로프는 러시아 당국의 인권 침해 실태를고발했다. 전직 러시아 전차부대장이 체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것에 대한 항의였다. 그는 기자 회견을 마친 후 모스코 대로변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다.

그 외에도 이스칸다르 카톨로니, 아들란 카사노프, 노바야 가제타 등 의문의 죽음을 당한 러시아의 언론인, 인권운동가는 상당히 많다. 이들은 모두 반체제?반정부적 논조의 기사를 보도하거나나 사회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
보리스 넴초프 전 러시아 부총리

 

지난 27일 (현지시간) 보리스 넴포츠 전 러시아 부총리가 사망했다. 그 역시 야권 운동을 이끌어 온 反 푸틴 인사였다. 그는 크렘린 궁 근처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안나 두리츠카야와 걷던 중 차량에서 내린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살해당하기 며칠 전엔 친구들에게 푸틴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 전 부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당선 후 1991년엔 넴초프를 니즈니노브고로드 주의 주지사로, 1999년엔 푸틴을 총리로 지명했다. 둘 다 옐친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 둘의 행보는 매우 달랐다.

넴초프는 150개에 이르는 집단농장을 사유화했고, 외국투자자에 각종 세제혜택을 주어 주에 외국기업과 자본을 유치했다. 이때의 성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부총리에 오르고 대선주자로 뽑히기도 했으나 "러시아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이 어지러운 (모스크바의) 분쟁과 어려운 직무에서 벗어나 주지사로 있는 것이 훨씬 낫다"며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러시아가 치명적인 경제위기를 겪자 옐친 정권이 흔들렸고, 1998년엔 넴초프도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을 모아 '우파세력 연합'을 창당해 하원 부의장에 선출되는 등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으나, 일부 당원이 푸틴 지지세력으로 돌아서면서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결국 2003년의 총선에 참패해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반정부 시위와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등 활동을 했다. 특히 우크라나 사태에 대해선 '평화 행잔'등 반정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사망 당시에도 다음날 개최할 반정부 집회 '베스나(러시아의 봄)' 를 주도할 계획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반편 푸틴은 강권 통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는 지도자다.

전임자인 보리스 옐친은 무분별한 민영화로 국부를 유출하고, 올리가르히(괴두재벌)의 정치?언론 통제를 막지 못해 국가 사회안전망 붕괴까지 초래했다. 이 때의 경제 붕괴로 인해 러시아 군은 소련 시절의 50분의 1 수준으로 규모가 줄어들기도 했다. 이 때 옐친은 KGB 출신인 푸틴을 총리로 등용했고, 푸틴은 반군을 강경하게 제압하며 대통령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대통령직에 오른 푸틴은 올리가르히를 제압하여 재벌의 독점을 막았고, 사회문제이던 레드 마피아도 척결했다. 오일머니를 통해 중산층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덕분에 푸틴은 독재자임에도 불구하고 75%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집권 후 겨우 태동하던 러시아의 민주주의 수준이 크게 후퇴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직선재이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사실상 대통령 임명제로 수정했으며,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2012년 대선에선 유권자가 1389명인 체첸 지역에서 푸틴을 지지하는 표가 1482표가 나와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14년의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러시아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푸틴이 스탈린이 되려고 작정했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실제로 그는스탈린의 정치적 숙청에 대해 "악랄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언급하거나, 공산주위 청년단체를 홍위병으로 쓰는 등 잔혹한 독재자로서의 모습을 점점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위 반정부 인사의 잇단 사망의 배후로 푸틴이 지목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