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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가격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티라노킹, 누구를 위한 선물인가? 아이가 바라는 선물은 아빠의 경제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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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대에 팔리는 반다이 파워레인저/다이노포스 DX 티라노킹 다크 버젼

나는 요즘 아들의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느라 고민이 많다. 옛날 부모들은 아이들 문화를 잘 몰라 문방구 주인에게 잘 팔리는 장난감을 추천받아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물을 문방구에 들고 가 원하는 걸로 교환하면 됐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슨 만화를 보는지 꿰고 있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좋아할 법한 선물을 찾느라 눈에 불을 켜고 온라인 장난감 쇼핑몰을 뒤져야 한다. 또봇, 카봇, 파워레인저, 바쿠간, 메탈블레이드, 유희왕 등등.. 종류도 정말 많다.

선물을 고를 때 우선하는 기준은 가격이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상품은 4~5만원 대고, 레고 같이 브랜드가 있거나 세트 구성 제품은 10만 원, 20만 원이 우습다. 같은 또봇 장난감이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사이트를 뒤져보니 최저가는 1만2천 원, 최고가는 7만3천 원이다. 평가글 수는 6~7만 원 대 제품이 가장 많다. 고가 상품이 판매량도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싼 제품은 구성이 알차다. 7만2900원에 판매 중인 '또봇 쿼트란'은 작은 또봇 4개를 조립하면 하나의 큰 로봇이 되는 상품이다. 이 정도면 우리 아이가 만족할 것 같다. 마음같아선 아이가 좋아하는 파워레인저 다니오포스 로봇을 사주고 싶지만 50만 원이란 가격은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고 보니 부장님은 딸내미한테 마텔사의 바비인형을 사줬다고 한다. 비쩍 마른 플라스틱 인형 하나가 30만 원이 넘다니 놀랍다. 부장님처럼 돈이 많다면 나도 사주겠지만 가난한 월급쟁이인 나는 고작 7만원 짜리 로봇을 사는데도 손이 덜덜 떨린다.

문득 코스피 하락으로 손해 본 주식이 떠올라 저렴한 제품을 살까 하다가 "그래도 우리 아이를 위해 사는 건데...", "더 좋은 장난감 가진 애한테 기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꾹 감고 또봇 쿼트란을 구매했다. 아이가 기뻐할 모습이 떠올라 조금 위안이 됐다. 다행히 아이는 또봇 쿼트란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껴안고 다니다 잘 때도 침대로 가져가는 걸 보니 뿌듯하다. 역시 비싼 장난감이라 아이도 좋아하나 보다.

그러나 이 장난감은 한 달도 안되어 망가졌다. 아이가 로봇이 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4층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린 탓이다. 산산이 부서진 또봇을 보고 울먹이는 아이이의 모습에 화도 났지만, 우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 다른 로봇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이번엔 2만 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제품을 골랐다. 합체가 안되고 무기도 몇 개 안 들어있어 아이가 실망할까 걱정했지만 차마 7만 원을 주고 똑같은 로봇을 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번에 산 로봇도 좋아했다. 스포츠카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씽씽 거리며 장난감과 함께 마루를 달렸다. 이번엔 침대 뿐 아니라 목욕탕에도 장난감을 갖고 들어갔다. 싼 장난감도 재밌게 가지고 노는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에게 "이번에 산 장난감이 더 좋아? 저번에 산 게 더 좋은 건데?"라고 묻자 아이는 "응! 애는 색깔이 파란색이고 빨라"라고 답했다. 하긴 생각해보니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저번 로봇은 7만 원이고, 이번 로봇은 2만 원 이란 걸 알 리가 없다. 친구와 다툴때도 자기가 더 비싼 장난감을 가졌다고 내세우는 건 본 적 없다. 어쩌면 가격을 기준으로 장난감을 고르는 건 어른들의 기준에서만 좋은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70만 원 대 일본제 책가방 란도셀을 사주는 부모들이 언론 보도된 적 있었다. 이 부모들은 내 아이가 기죽지 않기 위해 최고의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이 가방을 사는 거라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70만 원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돈인지 이해할 리 없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비싼 선물이란 이유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들 선물에 점점 큰 돈이 드는 이유는 '비싼 걸 사줬으니 좋아하겠지'란 어른들의 자기만족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