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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 내가 말한다" 조선왕조실록 못지 않은 역사의 보고, '정조의 일기 일성록'

 

정조 초상화
정조 초상화

한국고전번역원, 정조대 일성록 16년만에 완역

정조가 왕세손 때 쓴 일기에서 시작돼 국정과 관련된 주요한 일과 백성의 생활상 등을 소상히 기록한 일성록.

정조대부터 순종이 승하할 때까지 매일의 기록을 빠짐없이 담은 일성록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다.

1762년(영조 38년) 5∼7월은 날짜만 있고 그날의 기록이 전혀 적혀 있지 않다.

1762년 5월은 바로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질식사한 '임오화변'이 벌어진 달이다.

정조는 9살 때부터 매일 자신이 공부한 내용과 기억할만한 일을 일성록에 기록했지만, 아버지의 죽음(당시 정조 11살) 이후 두 달 간 아무런 글도 적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를 참혹하게 잃은 지 두 달 뒤인 7월 정조는 "상(영조)께서 동궁(정조)의 의절(儀節·예절)을 다음달 3일부터 거행하라고 명하셨다"며 다시 일기를 시작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998년 시작해 16년 만에 완역한 정조대 일성록 645책 중 현재 번역본이 나온 부분. 정조대 일성록 번역본은 모두 185권으로 내년 초 완간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998년 시작해 16년 만에 완역한 정조대 일성록 645책 중 현재 번역본이 나온 부분. 정조대 일성록 번역본은 모두 185권으로 내년 초 완간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는 다 알 수 없었던 정조의 면면을 보여주는 정조대 일성록이 16년 만에 완역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은 1998년 시작한 정조대 일성록 번역을 지난해 말 끝내고, 올해 중 평가·감수를 거쳐 내년 초 번역본 총 185권을 완간한다고 11일 밝혔다.

일성록에는 정조∼순종대 151년의 기록이 2천328책에 적혀 있으며 이 중 정조대는 전체의 3분의 1가량인 645책이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보다 다소 늦게 번역이 시작됐지만, 이들 기록에 없는 희귀한 내용을 다수 담고 있어 조선 후기사의 보고(寶庫)로 여겨진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1762년 5월부터 7월까지 끊긴 정조의 일성록. 정조대 일성록을 완역한 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정조는 9살 때부터 매일 자신이 공부한 내용과 기억할만한 일을 일성록에 기록했지만, 아버지의 죽음(당시 정조 11살) 이후 두달간 아무런 글도 적지 못했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1762년 5월부터 7월까지 끊긴 정조의 일성록. 정조대 일성록을 완역한 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정조는 9살 때부터 매일 자신이 공부한 내용과 기억할만한 일을 일성록에 기록했지만, 아버지의 죽음(당시 정조 11살) 이후 두달간 아무런 글도 적지 못했다.

 

각 도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한 장계(狀啓)나 백성이 올린 '상언'(上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국왕이 거동하는 때에 맞춰 꽹과리 등을 울려 직접 호소한 내용인 '격쟁'(擊錚)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이 임금이 이르는 말 즉, '상왈'(上曰)로 시작된다면 일성록은 1인칭 시점인 '여왈'(予曰·내가 말하기를)로 시작하는 점도 특징이다.

일성록 번역을 총괄하는 김옥경 한국고전번역원 일성록번역팀장은 "일성록은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강목체(綱目體·큰 글씨로 쓴 줄거리 기사(강)와 작은 글씨로 쓴 구체적 서술(목)이 기본 틀을 이루는 서술방식)로 돼 있어 일목요연하게 자료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조가 일성록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팀장은 "노론의 반대 속에서 즉위한 정조가 규장각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백성의 삶을 세심히 살피고자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조의 정치 철학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일찍이 하나의 벽(癖)이 됐다. 아무리 바쁘고 번거로운 일이 있을 때라도 반드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록해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는 뜻을 담았으니 이는 성찰하기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심력을 살펴보려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있다."(일성록 중 정조 5년 8월 19일)

일성록 번역에는 매년 10여명의 전문가가 투입되고 있고 순종대까지 모두 번역하는 데 약 16∼22년이 걸릴 예정이다. 오는 11월에는 정조대 일성록을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