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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아줄 끝에 있는 건 희망이 아닌 극단주의와 선동.

극우, 꼰대, 수구 꼴통, 좌빨, 빨갱이, 종북....

뉴스 기사 댓글에 흔히 달려 있는 욕설이다. 모두 특정 정치 스탠드를 비하하는 뜻인데, 상대방 논리를 한순간에 무력화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서로를 '수꼴', '종북'으로 나누는 순간 소통은 단절돼 논리도 사라진다.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니 대화와 토론은 사라지고, 주장은 극단에 치달아 좁혀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때아닌 이념 대립이 다시 시작된 건 2008년 경이다. 매우 뒤숭숭한 해였다. 정권이 교체되고,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건으로 남북관계는 험악해졌으며, 한-미 FTA로 인한 반미 감정, 광우병 루머로 인한 공포 분위기 조성, 대규모 촛불시위로 몇 년 간 잠잠했던 사상 갈등이 본격적으로 사회 전면에 드러났다.  

그중 가장 파급력이 컷던 사건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였다. 지난 10년간 매년 4~5% 성장률을 유지하던 한국 경제는 2008년엔 2.3%, 2009년엔 0.3%의 처참한 성장률을 기록했고, 건설업을 시작으로 내수경제가 침체돼 중산층은 몰락, 기업 수출은 날개를 달며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경제 위기가 극단주의로 이어진 사례는 많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뒤 경제적 궁핍과 막대한 전쟁 배상금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은 나치의 선전에 너무나 쉽게 넘어갔다. 궁지에 몰린 그들은 '위대한 아리아인'이란 유치한 선동에라도 매달려 버텨야 했으며, 유대인이 악의 화신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의심할 기력도 없었다. '사회적 폭포'에 휩싸인 그들은 집단사고에 휩쓸려 맹목적으로 행동했다.

저성장이란 끝없이 어두운 터널에 지친 한국 국민도 각자 붙잡고 버틸 동아줄을 찾았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 매달린 집단이 폭력과 폭언, 협박으로 정적(政敵)을 굴복시키려는 모습을 보니 "정상적인 집단일까?"라는 의문이 따른다. 일제시대에나 있었을 법 한 폭탄 투척이 미디어에 보도되자 그를 열사, 의사로 추켜세우는 칭찬이 이어진다. 공권력에 맹렬히 저항해 피를 보는 자들은 전사 칭호를 달고 우쭐해한다.

해외 극단주의도 다를 것 없다. 금융위기로 한국보다 더한 피해를 입은 남유럽엔 급진 좌파 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지난 몇 년 간 극심한 실업난에 시달렸고, 극우, 혹은 극좌 정당 지지율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그리스의 좌파 정당인 '시리자'는 2010년 구제금융 이전만 해도 득표율이 5%도 안되는 소수정당이었으나, 2012년 전후로 실업률이 7%나 급증하자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이들은 긴축 반대와 세금 감면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며, 독일?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과, 기득권 세력으로 국민의 분노를 돌려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일본 역시 30년이 넘는 경기 침체를 지나며 극단 우익 사관이 힘을 얻었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양극화가 심해져 불만 여론이 커지자, 일본 극우 정치단체는 경기 침체 탓을 중국, 한국, 재일교포, 부락민 등에 전가했다. 혐한(한국 혐오)를 주제로 한 도서가 인기를 끌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의 술수라고 선동됐다. 온라인에만 존재하던 '넷우익'들은 욱일승천기와 함께 가두행진을 시작했고, 전쟁을 반성한 평화 헌법은 자위군 창설이 본격화되며 유명무실해졌다.

우린 모두 먹고살 걱정에 떠밀려 동아줄에 매달렸다. 이 동아줄 끝에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줄에 이끌려 엉뚱한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극단에서 극단을 미워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