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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 스카이-팬택 핸드폰, 아이폰 못지 않게 사랑 받은 브랜드

한때 팬택의 핸드폰 '스카이'가 '먹어주던'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갖게 된 핸드폰이 스카이(Sky)에서 출시된 카메라 폰이었다. 당시 가격으로 70만 원 정도 하는 고가 최신 기기라 혹시나 떨어뜨릴까 조심하며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외장 카메라를 핸드폰 옆에 꼽아 사진 찍는 광고는 당시엔 혁명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사진 한 번만 찍어보자며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와 졸라댔고, 난 못 이기는 척 속으로 좋아하던 아이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랫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스카이는 애니콜과 싸이언 사이에서 유독 빛이 났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다른 폰들과 달리 몸매가 매끈하고 부드러워 들고 다니는 감촉도 좋아, 자연스레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메신저는 상대방이 내 문자를 확인한지 바로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답장 문자가 없으면 별별 상상을 하며 기다려야 했다. 한참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답장이 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33만화소 외장 카메라를 선보인 스카이 IM-3100

33만화소 외장 카메라를 선보인 스카이 IM-3100

요즘 여자아이들은 셀카가 잘 나온다며 아이폰을 사지만, 당시엔 셀카도 스카이가 최고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셀카 화질이 핸드폰 선택 1순위였던 건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사진 보정 앱도 없던 그 시절, 자연스럽게 뽀샤시한 효과를 주는 스카이 폰은 사진 찍는 맛을 느끼게 해줬다. 덕분에 스카이는 10대~20대 여성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스카이 폰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우쭐해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품 가방 들고 다니는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당시 스카이는 SK텔레콤이 자체 생산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해서 제작했다. 통신사가 단말기 제조를 하면 독점을 막기 위해 생산규모를 제한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스카이는 1년에 120만 대만 한정 생산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일부 인기 모델은 재고가 없어 팔지 못 할 정도였다, 디자인도 예쁘고 SK텔레콤 가입자만 살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고, 여기에 품귀현상까지 생기자 스카이는 명품 아닌 명품 취급을 받았다. 스카이 사용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천 명이 가입할 정도였다.

 

당시엔 감각적이었던 스카이 제품들, 슬라이드 오픈은 스카이의 상징이었다.

당시엔 감각적이었던 스카이 제품들, 슬라이드 오픈은 스카이의 상징이었다.

스카이는 광고도 남달랐다. 김아중 옆구리를 찔러 노래를 바꾸는 조그셔틀 폰 광고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스카이 슬림폰은 선을 따라 걷는 남녀가 살짝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적인 광고에 힘입어 하루 3천 대 매출을 올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광고 마지막에 나오는 "It's different"란 캐치프레이즈는 스카이가 정말로 다른 핸드폰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모두 스카이가 곧 업계 2위 사이언을 따라잡고 삼성 애니콜과 1위를 다투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20만 대 공급 제한이 걸림돌이었다. 스카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LG 텔레콤용 단말기를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공급 제한 규제도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제야 스카이 천하가 오나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KTF가 훼방을 놓았다. KTF는 스카이에 대한 공급 제한이 풀려 타사에도 스카이 단말기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자사가 망할 거라 주장하며 규제 조치 연장을 요구했다. 규제에 지친 SK텔레콤은 스카이 단말기 제조사던 SK 텔레텍을 다른 기업에 매각해 이동통신사와는 관련 없는 기업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높은 인기로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스카이의 광고

높은 인기로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스카이의 광고

SK 텔레텍을 인수한 곳이 바로 팬택이었다. 팬택은 SK 텔레텍 사명을 SKY 텔레텍으로 변경한 뒤 고급형 브랜드 스카이와 저가형 브랜드 큐리텔로 시장을 병행 공략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기존 스카이 연구진이 인수 과정 중 타 단말기 제조사로 대거 이탈하며 스카이의 명맥은 끊겼고, 이후 팬택은 경제 위기로 워크아웃을 거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스카이는 명품 핸드폰에서 기기값을 받지 않는 공짜폰으로 전락했다. 10대가 열광하던 아이돌 폰이 졸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는 효도폰이 된 거다.

이후 팬택은 시리우스-이자르-베가-미라크로 이어지는 스카이 계열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모바일 시장 흐름을 잘 읽은 덕에 초기 경쟁에서 선방할 수 있었으나, 결국 삼성과 엘지에 밀려 다시 워크아웃 상태에 빠졌다. 몇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불발로 그쳤고, 결국 회생하지 못하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 팬택 관계자는 "그동안 팬택 임직원들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고문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회생절차 폐지 신청으로 더는 회사 매각이 어렵다는 걸 이제 스스로도 잘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내가 팬택의 전성기와 내 어린 시절을 겹쳐 추억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지막까지 팬택이란 기업이 상징하는 것을 놓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