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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와 유로, 독일 패권주의 상징이 되다

역사상 평화와 공조를 이루려는 인류의 시도는 여지없이 실패했다.

1993년 EU(유럽연합)가 출범한 이후 유럽의 정치 경제 통합 시도는 '세계 평화를 위한 인류의 진전'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EU 설립 후 유럽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고, 역사적∙문화적∙종교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국가간 돈독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지난 2012년엔 노벨상 수상자로 유럽 연합이 지명되기도 했다.

 

이슬람 테러리즘 혐오 시위에 참석한 독일 시민들
이슬람 테러리즘 혐오 시위에 참석한 독일 시민들

☐ 자유로운 인구 이동으로 경제 격차 줄인다?.... 민족갈등만 낳아

EU는 가입국 간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이는 EU의 전신인 EC의'공동시장'(Common Market) 개념과 관련 있는데, 가령 알바니아 노동자가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가입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 거다. 덕분에 인건비가 낮은 국가 노동자들이 실업률이 낮은, 혹은 높은 급여를 주는 국가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었다.

EU의 경제적 효용을 주장하는 자들은 노동자 이동을 통해 "급여 수준이 높은 회원국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급여 수준 과열을 막을 수 있으며, 급여 수준이 낮은 회원국에선 노동자 이주로 인해 실업 문제를 줄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향이 장기적으로 EU 역내의 급여 수준을 평등화할 것이며, 국가간 경쟁력이 동등해지는데 도움이 될 거란 장미빛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EU가 기대했던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기후가 낯선 타국으로 이주하는걸 꺼렸고, 낮은 임금, 혹은 높은 실업률을 감수하면도 모국에 남는걸 선택했다. EU설립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노동자의 국가 소속 의식이 높았던 거다. 결국 국가간 소득 수준 격차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유럽 통합엔 걸림돌로 작용했다.

오히려 EU의 이민 규정 완화 정책 탓에 터키나 북아프리카, 중동에서 유럽으로 이주하는 노동력이 늘어나며 당초 기대했던 역내 인구 이동의 수요를 역외 이동이 채워버렸다. 타 대륙 유입자로 인해 민족적∙문화적 갈등은 늘어났고, 민족간 반목은 올해초 '샤를리 앱도 총격 사건'등 폭력 사태로 터져나오고 있다.

 

☐ 허구에 불과했던 유럽 통합, 유로 딜레마 해결하지 못했다.

EU는 유로존 출범으로 국가간 연대를 경제 번영으로 확대하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한 건 '최적 통화지역 이론'이었는데, 단일통화가 도입되는 지역이 고도로 통합한다면 환전비용 절감과 역내 교역 촉진으로 장기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다만 각 국가가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점이 딜레마였다. 각 국가간 경제 구조와 산업 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가별로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통화한 카드가 묶여버리자 개별 정부는 경제 위기에 신속히 대처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유로존 옹호자들은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불황지역에서 과열지역으로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해 딜레마가 해소된다."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유럽의 통합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유로화 위기는 전 세계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그리스가 단일 통화를 사용했다면 통화 가치를 절하해 적시에 위기를 넘겼을거라 전망하기도 했다. 이미 1990년대 경제 위기에서 핀란드가 자국 통화 마르카 가치를 깎으며 경제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유로존에 묶인 그리스는 자국 재정 수준에 맞지 않는 유로 기준금리 정책을 유지하느라 상황을 악화시켰다. 덕분에 EU와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2,400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고, 2008년 이후 GDP(국내총생산)는 25% 감소, GDP 대비 부채는 109%에서 180%로 증가했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국가 대부분이 1년이면 경제활동을 정상적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유로존 사태를 방치하는 자 누구인가?
독일 메르켈 총리 

☐ 산산히 부숴진 유럽의 꿈, 독일은 그리스를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명한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EU와 유로가 살아남으려면 통합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로존의 모순은 통화를 통합하면서도 국가간 재정은 단일화 하지 않았데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로존이 재정통합까지 하게 되면 사실상 하나의 거대 국가가 된다. 하지만 EU 수장인 독일은 이를 결사반대했다. 유로존 경제 위기는 각 가입국이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복지를 줄이는 등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로 가장 이득을 보는 국가 역시 독일이다. 독일은 유로 위기 이후 자국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 상당한 무역 흑자를 이뤘다. 200년 이후 15년간 흑자 규모는 4배로 늘었고, 2014년에만 170억 유로 (약 283조 원)의 무역 수익을 얻었다. 남유럽과 비교되는 견고한 경제 구조 덕에 국채 수요도 증가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총 409억 유로 (약 60조 8천억 원)에 달하는 이익도 얻었다. 남유럽 위기가 독일에겐 기회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유로존 위기에 추가로 지급한 비용은 5억 9,900만 유로에 불과했다. 세계 평화의 상징이자 인류의 위대한 시도였던 유럽 통합은, 결국 독일의 경제적 패권주의만 증명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