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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는 이제 FT아일랜드와 경쟁하게 되는건가

원더걸스가 드디어 컴백한다. 어... 그런데 4인조 밴드로?

대한민국에서 밴드 음악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언더그라운드(요즘엔 인디씬이라 부르지만)가 아닌 기획사에서 만든 밴드는 인정받기가 더 힘든데, 이른바 '록부심'을 부리는 밴드 음악 마니아 층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일반 리스너는 익숙하지 않은 음악 스타일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밴드를 표방하는 아이돌은 필연적으로 "악기는 다룰 줄 아니?"라는 비웃음과, "시끄러운 음악 왜 듣지?"란 시장의 반응을 이겨내야 한다.

90년대 DSP미디어에서 데뷔한 보이그룹 '클릭비'는 악기 풀세트를 갖춘 밴드로 시작했으나 4집 이후론 댄스곡으로만 활동했으며, SM에서 야심 차게 기획했던 4인조 밴드 '트랙스' 역시 상당한 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외면을 받고 2인조 그룹으로 축소됐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밴드 '버즈'는 본래 인디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밴드였다.

다행히 2000년 이후 밴드 형태를 갖춘 아이돌 그룹도 인기를 얻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FT아일랜드'는 2007년 데뷔한 뒤 '버즈 짝퉁', '기타 줄 가는 법도 모른다더라', '이홍기(보컬) 말고 나머지는 모르겠다'라는 등 오랜 비판에 시달린 끝에 그룹 포맷을 바꾸지 않고 가요계에 자리 잡는데 성공했으며, 뒤이어 2010년에 데뷔한 4인조 밴드 '씨엔블루'도 데뷔곡 '외톨이야'를 히트시키며 아이돌도 밴드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후 걸그룹 최초로 'AOA'가 밴드 구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밴드 구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클릭비(위) 와 트랙스(아래)
밴드 구성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클릭비(위) 와 트랙스(아래)

 

21일 JYP 엔터테인먼트는 원더걸스 컴백 소식과 함께 그룹 멤버 '선미'가 베이스를 연주하는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비록 라이브 영상은 아니지만, 영상에 입혀진 음원은 선미가 직접 녹음한 거라 한다. 독주임에도 물구하고 인상적인 연주 실력을 보여줘 나머지 멤버도 비슷한 수준이면 악기도 다루지 못한단 논란엔 시달릴 것 같진 않다.

문제는 원더걸스의 기존 이미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중의 머릿속에 원더걸스는 아직도 '텔미'와 '소핫', '노바디'등 디스코풍 댄스곡을 부르는 소녀들로 기억된다. 밴드 구성으로 비슷한 음악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전성기 복고 스타일의 음악을 재연하기엔 트렌드에서 벗어난 감이 있다.

결국 지금까지 원더걸스 음악과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EDM(Electronoc Dance Music, 전자음으로 이뤄진 댄스 음악)에 비해 장르 선택의 폭이 좁은 밴드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점은 리스트가 될 수 있다. 만약 무늬만 밴드인 음악을 할 경우 매니아층의 냉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밴드 활동이 부진해 댄스그룹으로 회귀를 시도한다면 그룹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긴 힘들 거다. 열역학적으로 말하면 되돌리기 힘든, 비가역이 큰 선택을 한 셈이다.

JYP가 원더걸스에 어떤 비전을 심었는진 향후 활동을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최근 JYP의 사업적 부진을 보면 우려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록밴드 '부활'의 초대 보컬이던 이승철은 지난달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션은 처음 시작한 음악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라는 말을 했다. 이승철은 현재 록에만 전념하는 가수가 아니지만 부활 활동이 아직도 그의 음악성 영향을 끼친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JYP와 원더걸스는 모두 밴드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고, 기획사의 판단 실패로 수렁에 빠진 원더걸스가 돌아온다는 소문은 기쁘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해선 걱정스러운 마음을 뗄 수 없다.

 

<선미 베이스 연주 티저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