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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인생의 보람은 마천루 뿐인가... 오이디푸스와 다를바 없는 비극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과 제2 롯데월드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과 제2 롯데월드

남성은 최초의 적을 집안에서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아버지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남성 아동에게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간주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남근기인 생후 3~5세에 주로 나타나는 이 증상은, 아버지에 대한 복종심과 존경, 그리고 증오심을 유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성장 중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선망으로 바꾸며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고, 초자아를 정상적으로 발달시키며 콤플렉스를 해소한다. 다만 프로이트는 이후에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적 성향은 삶 전체에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는 형제다. 성경에선 아담의 장남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을 최초의 살인이라 적으며 형제간 증오하는 감정이 있음을 은유했다. 현실에서도 형제간의 경쟁과 대립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극적 사례를 나았는데,  작게는 동생이 공부 잘하는 형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례에서부터, 크게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비류와 온조처럼 국가 건설을 두고 대립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 아버지∙형제에 대한 증오심, 권위적이고 통제안된 환경적 요인이 커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증오심은 현대에 와서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됐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경우, 프로이트의 말처럼 '남성기'에서 발현하는 보편적 심리가 아닌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며, 성장 환경이 가부장적이고 아버지와 정서적 소통이 어려울 경우 반항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반박을 받고 있다.

또한 형제간 갈등이 심한 경우, 서열을 통제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연구가 나왔다. 아버지가 불명확한 위계질서로 서열에 혼란을 주는것이 다투는 원인이란 주장인데, 실제로 조선의 이성계나 삼국지의 손권 등 많은 지도자가 정통성이 없는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주려다 '왕자의 난'등 피바람을 불러온 사례가 많다.

롯데 그룹 역시 후계가 평안할 거라 예상하긴 힘들다.

신격호 회장은 분명 범인(凡人)은 아니다. 형제와 라면 사업을 두고 소원한 사이가 될 정도로 경쟁하고, 물차는 모래밭이던 석촌호수를 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켰으며, 공습에 공장이 무너져 무일푼이 돼도 다시 재기하는 등 그의 행보는 평범한 사람은 따라할 수도 없는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유독 후계 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이었다. "내가 아직 건강하니 힘이 닿는 데까지 직접 지휘하겠다." 버티다보니 어느덧 90세가 넘었고, 2014년이 되어서도 "한국의 롯데그룹은 차남 신동빈 회장에게, 일본의 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에게 물려줄 것."이라며 석연찮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한국과 일본 롯데가 완전히 별개의 기업이 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2013년 촬영된 신격호 회장 (당시 91세)
2013년 촬영된 신격호 회장 (당시 91세)

▵ 애매모호한 후계 구도, 무뚝뚝한 사업가 아버지...

하지만 지난 1월 아들 신동주 씨가 일본 롯데 경영권을 상실하며 후계 구도에 이변이 생겼다. 한때 지주회사 일본 롯데홀딩스가 타 계열사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되고, 신동빈 롯데 회장은 한국 롯데 경영에만 매진할 거란 예측도 나왔으나, 신동빈 회장은 마침내 두 롯데를 모두 차지하고 아버지까지 유폐시켜버렸다. 신격호 회장을 총괄회장직에서 해임해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한 거다.

재벌가에서 가족간에 경영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난 적은 많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축출하는데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가에서 이맹희 씨가 아버지 故이병철 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끌어내기 위해 정부에 탈세혐의를 고발했었지만 실패로 끝났고, 현대의 '왕자의 난'도 형제간에 벌인 다툼이었지 故정주영 회장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었다.

신동빈 회장은 10년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 있다. 말수가 적고, 칭찬에도 인색하며 완벽주의자에 가깝다는 게 신격호 회장에 대한 일반적 평가이며, 일본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냉정한 면도 있다고 했다. 롯데 가문 사람들간 감정적 연결고리를 함부로 추측할 수 없겠지만, 거듭된 신격호 회장의 재혼과 사업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형제지간 경쟁도 불사하는 그의 성격,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셔틀 경영'을 했던 그의 동선을 생각했을 때. 그가 좋은 아버지 역할까지 하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격호 회장이 일생을 불태워 남긴 유산은 석촌호수 앞에 빛나는 '제 2 롯데월드일까?' 아니면 그 마천루 사무실에 앉아 롯데 그룹을 지휘하게 된 아들 신동빈 회장일까? 아들에 의해 평생 쌓은 탑에서 쫓겨난 93세 노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에휴... 돈이 뭔지..."라며 안타까운 탄식으로 노인을 위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