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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키즈', 몇 년 안에 '3포 세대'가 될 수도 있다

주가 폭락 이후 괴로워하는 중국 시민
주가 폭락 이후 괴로워하는 중국인

▵ 최근 '스타트업'이란 용어를 많이 쓰는 이유는 '벤처기업'이런 단어의 의미가 퇴색된 탓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녀가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행동이다. 자영업을 포함한 영세 사업체 대다수가 평균 수명 5년을 넘기지 못하는 이 시대에, 가진 것 없는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공무원 시험을 봐라'라는 현실적 지침뿐이다.

하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2000년대 전후 '벤처붐'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었다. 똑똑한 학생들은 너도나도 사업체를 차렸고, 그것이 영세하다고 주눅 들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실에 차있었고, 막 태동하기 시작한 웹 환경과 IT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기회가 무한함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언론은 IMF 이후 몰락한 대기업 대신 벤처기업이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할 거라 설레발 쳤고, 정부는 벤처에 국가 경제 사활이 달려있다 믿어 아낌없이 예산을 지원했다. 이에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E-삼성 프로젝트 등 벤처스타일 사업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대학교 학생이 행정 고시도 아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네오콘 집권기를 어둡게 보낸 청년들에게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의 성공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사건이었다.
네오콘 집권기를 어둡게 보낸 청년들에게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의 성공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사건이었다.

▵IT거품의 붕괴 미국, 독일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

하지만 거품이 꺼진 뒤 드러난 현실은 민망할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수많은 경영자가 불법 대출과 배임, 주가조작, 횡령,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 비리로 옥고를 치렀으며, 기업은 줄줄이 상장 폐지당했다. 덕분에 벤처 전용 증권시장인 '코스닥'은 부패의 온상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몰락한 원인은 벤처 사업가들이 기업 수익구조 개선보단, 이름값을 올려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데 더 관심이 있었던 탓이다 . 가치를 까 보기 시작하니 펀더멘털이 튼튼한 기업은 거의 없었고, 정부도 다시 대기업의 손을 잡으며 벤처 열풍의 종식을 선언했다.

벤처 투자 거품에서 살아남아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나마도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포털 기업이나, 엔씨소프트, 네오위즈게임, 넥슨 등 게임회사로 업종이 다양하지 않다. '벤처'는 희망의 상징에서 망조가 든 단어로 전락해버렸고, 청년층 사이에서도 창업에 도전하기보단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 다른 국가에서도 IT버블 붕괴 사례가 있었다. 미국에선 인터넷/통신 기업이 첨단주로 각광을 받으며 거액의 돈을 끌어모았고, 독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느린 인터넷 속도로 웹 서비스의 질이 높지 않았고, 점차 소비자의 불신과 반감을 키워갔다.

결국 나스닥은 거품을 뒷받침할 힘을 내지 못하고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해 4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허공에 날렸다. 국민소득 증가율이 반토막 나고, 실업률이 치솟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후 보수적 네오콘 정권이 집권했고,  미국 청년층은 애플, 페이스북 등 새로운 IT 성공신화가 나타날 때까지 긴 침체기를 보내야만 했다.

 

'마윈 키즈'들의 영웅, 마윈 알리바바 회장
'마윈 키즈'들의 영웅, 마윈 알리바바 회장

▵ 중국, IT붕괴, 닷 컴 붕괴와 비슷한 절차를 걷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중국은 신규 창업하는 기업이 하루 1만 1천개에 달할 정도로 창업 열풍이 불고 있으며,  벤처캐피털 투자 자금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말 530억 달러에 달했다. 이외에 엔젤투자자금, 창업 기원 지원 거래시장 설립  등 창업자를 위한 자금을 확보 방안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20~30대 중국 청년들은 한국의 90년대 대학생들처럼 진취적이란 평을 받는다. 창업자 주 연령대가 18~24세 대학생인데다 창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존경하는 학생이 많아, '마윈 키즈'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창업에 도전해 언젠가 마윈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에 불타 있다.

하지만 증시 대폭락과 함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도 급감하고 있다. 특히 선전에 몰려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본데다, 투자자도 자취를 감추는 상황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베이징 소재 벤처캐피털 업체인 베텔스만 아시아의 아나벨 롱 투자책임자는 "창업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투자금에 의존한 탓이다."라며 방만했던 투자 행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이 아닌, 자본을 중심으로 첨단 기술을 보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거대 자본이 선호하는 방식은 인수합병이다. 중국 벤처캐피털인 GSR벤처스는 세계시장에서 IT와 인터넷, 바이오 기업 인수를 목표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펀드 조성은 중국이 수입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 정부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보도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부에 의한 대기업체제로의 회귀'현상이 재연될 수 있는 거다.

이러한 경향은 '마윈 키드'들은 IT버블 붕괴의 희생양으로, 그들의 자녀를 공무원 시험 합격과 대기업 입사에 목을 메는 세대로 탈바꿈하게 할 거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웃을 일이 아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정체에 빠진다면, 중국에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 역시 저성장이란 늪에 더 빠르게 빠져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