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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이슈메이커로 거듭나나? 박근혜 대통령 처럼 해외 활동으로 지지율 상승 효과

얼마 전, 영국에서 만났던 현지인 친구의 동생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직 스무살이 되지 않은, 아시아 문화를 동경하는 천진한 아이였다.  

그녀는 아시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한국어를 배우고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왜 한국에 오고 싶냐고 물으니 아시아인 특유의 '공경'과 '예', '정' 등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성장하는 나라라 기회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이 네 생각대로의 나라는 아닐거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한국의 치부를 말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동양 철학과 문화는 네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거야."라는 어정쩡한 대답만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20여 개나 되는 적지 않은 수의 나라를 방문했지만, 그중 국민들이 자신만만하게 "우리 나라 정말 살기 좋아! 이민 와도 좋아."라고 말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의례적인 인사말로 "이 나라는 정말 살기 좋아 보이네요 이민 와도 되겠어요." 라고 말하면,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그렇게 살기 좋진 않아요.. 이러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힘들어요."라고 주절주절 말을 꺼내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한국 같은 좋은 나라에서 왜 이민을 오려고 해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나라도 있었다. 개발도상국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방문한 곳 대부분은 유럽 국가였고, 대부분 소득 수준이 높아 한국인들이 동경하는 곳이었다.

한국을 칭찬하려는게 아니다. '해외'란 특수한 조건에 있는 '막연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반기문 UN사무총장
반기문 UN사무총장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자랑스러운 한국인 리더다.

반 총장이 2006년 사무총장 선거 출마에 나가겠다고 선언했을때,  전 국회의원 전여옥은 "국제사회 조롱거리가 될 거다."라며 쓴소리를 했다. 그만큼 전망이 불투명했던 거다.

그때문인지 무명인 그가 범 세계적 인물로 부상한건 변방국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으로 인식되어 전 국민적 환영을 받았다. 반 총장에 대한 인기는 신드롬처럼 달아올라 식을 줄 몰랐고, 그는 지금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는 설문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반 총장은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리얼미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해왔고, 실제로 대다수 국민도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는걸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지역, 연령, 정치 성향에 따른 편향 없이 전 계층에서 지지율이 높았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반 총장은 5월 국내 정치에 뜻이 없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이며 지지도 설문에서 자신을 빼줄 것을 요청했다.

그가 지지율이 높은 건 국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덕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다른 정치인처럼 각종 의혹에 휘말리지 않고, 지지층이 한정되지도 않은 덕에 전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반 총장에 대한 열광적 반응은 다소 섣부른 면이 있다. 반 총장은 정치인이 아닌 외교관이며, 올해 71세로 대통령까지 역임하면 나이가 팔순에 가까워진다.

정치 성향이나 국정에 대한 비전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경제 성장을 우선할지, 인권과 복지에 향상에 힘을 쏟을지, 친기업적 성향을 보일지 강한 정부를 추구할지, 대선에 나온다면 어떤 정당을 통해 후보로 나설지 전혀 모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그를 지지했던 거다.  

반 총장이 대통령을 하기 부적합 한 인물이란 게 아니다. 그가 국내가 아닌, 먼 곳에 있는 인물이기에 막연히 추종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거다.

 

순방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
순방 마치고 돌아오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순방으로 여론과 언론의 입방아에 수차례 오르내렸다.

사실 순방 자체보단,  시기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못했던 점이 여론을 악화했다고 볼 수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 1주기가 추모행사가 등, 국민이 동요할 수 있는 시기에 해외 순방을 감행한게 원인이었던 거다. 여기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을 사건을 시작으로 순방마다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비난하는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나 정권에 타격이 있을거란 예상과 달리, 13번의 순방 중 9건은 대통령 지지율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집권 초 미국과 중국을 방문했을 땐 6~8.8%에 이르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으며, 지난 4월 남미 순방을 마친 후에도 지지율이 4%나 늘었다. 지지율이 하락한 사례는 4건 있었지만 모두 1%대 미미한 수준이었다.  

지지율이 하락한 시기는 '국정원 댓글 알바 활동비 지급 시인', '문창극 임명동의안 재가 연기', '세월호 대국민 담화 공식 사과', '세월호 수중 수색 중단 및 싱글세 논란', 등 대통령과 직접 관련 있는 이슈가 불거졌을 때였다. 일반적인 해외 순방은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데 효과가 있었던 거다. 심지어 세월호 1주기 추모식과 성원종 리스트 폭로 이후에 있었던 순방에서도 지지율은 상승했다.

리서치플러스 임성렬 대표는 "해외순방을 다녀오면 뭔가 성과를 가져오고 또 방송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당연히 지지율이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중파 3사는 순방 기간 중 대통령에 대한 리포트와 단신 보도를 각각 162건(SBS 8시 뉴스), 155건 (KBS 뉴스 9), 152건 (MBC 뉴스데스크) 노출했다.

국민이 해외 순방에 좋은 평가를 내린 이유론 "열심히 한다, 노력한다."가 꼽혔다. 이는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슬로건 '뛰어나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도 걸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순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국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려는 응답은 높지 않았다.  

 

큰절 올리는 김무성 대표
큰절 올리는 김무성 대표

박 대통령에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외국행을 선택했다. 이슈메이커로선 대통령보다 더 유능한 것 같다.

지난 26일엔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 '큰절'로 감사 인사를 표하는가 하면, "중국이 덩샤오핑을 국부로 모시듯, 우리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정치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31일, 뉴욕의 한 식당에서 "보수 우파가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 해야 한다. 정권 재창출에 목숨을 바칠 각오하겠다."라며. 2017년 대선을 겨냥한 다짐도 했다.

김 대표의 이행보를 놓고 보수 진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진보 진영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면서 김 대표는 정치적 득실을 떠나 국민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은 물론 일찌감치 국내 여권 지지층을 선점하려는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장소가 미국인 까닭에 같은 행동도 더 큰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정치적 행동을 제외한 의미 있는 행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방미 취지는 본래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대일 외교 압박을 펼치겠다는 데 있었지만, 반 총장과의 만남은 남북관계 개선을 다짐과, 한국이 녹색기후금(GCF) 기금 사무국으로서 역할을 다해줄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끝났다. 참전 용사를 만난 건 외교적 의미가 있지만 집권당 대표가 움직여서 한 일이라 보기엔 부실하지 않나 싶다.

김 대표의 방미 실익이 어디에 있을지는 아직 막연하다. 그러나 미국발 정치 유세는 국내 생산 버전보다 강렬했고, 지지세력을 집결시키는데 효과가 있었다 . 31일, 차기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김 대표는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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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기 팍팍한 탓인지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이후 북유럽 이민자는 3.6배나 늘었다고 하는데, 사실 같은 나라 사람으로선 썩 기분 좋은 소식도 아니고, 나름대로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본 탓에 그들의 시도에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스스로 행복을 찾지 못한 사람이 장소를 옮긴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한국엔 없는 기회를 찾아서 가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책에서 나온 내용인지는 모르겠는데 우연히 재미있는 문단을 봐서 마지막으로 남긴다.

 

'언제나 말짱한 정신의 아일랜드처럼, 요리를 잘하는 영국처럼, 겸허한 프랑스처럼, 질서 정연한 이탈리아처럼, 유머러스한 독일처럼, 인심 좋은 네덜란드처럼, 재능 많은 벨기에처럼, 소박한 스페인처럼, 인내심 많은 오스트리아처럼, 유명한 룩셈부르크처럼, 잘 조직화된 그리스처럼.......'

 

인간사에 부조리가 없는 곳은 없다. 타국을 배경으로 연출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볼 도리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