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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일본 민주주의, 그리고 닮아가는 한국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박근령의 일본 발언에 대한 국민 의견'설문조사는 연령과 지역, 계층과 관계없이 전국민적으로 반일감정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발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라는 발언을 해 뭇매를 맞았다. 그녀의 발언이 부적절하다 응답한 비율은 79.9%나 된 반면, 적절했다고 옹호한 의견은 고작 7.6%였다.

하지만 반일감정과는 별개로 한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재현할 거란 암울한 전망이 제기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며, 정경유착과 부동산 개발, 인구 고령화로 인한 내수경제 위축과 생산동력 저하, 불합리한 노동문화 등 일본과 닮은 경제 구조는 새삼 위기감을 들게 한다.

하지만 일본을 닮아가는 건 비단 경제 분야만은 아니다. 한국이 사회적으로도 일본을 닮아가는 조짐 역시 여러 번 포착돼 왔다.

 

국민연슴 폐지를 외치는 시민들
국민연금 폐지를 외치는 시민들

1. 세대 분열

70년대 일본 영화 감독 데리야마 슈지는 에세이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의 한 에피소드에서, 젊은이의 기회를 뺏는 부유한 노인을 비판하는 논조의 글을 적었다. "왜 젋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부유한 노인들과 짝을 이루는 걸까?, 이는 생물학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라고 개탄하는 그의 논조엔 세대를 계층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데리야마 슈지 세대는 기득권의 자리에 올랐다.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한 일본 고령층은 연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인구 구조가 급격히 노령화된 까닭에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것 또한 노인들이고 돈을 가장 잘 쓰는 것 역시 노인들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80세 이상 고령층이 받는 연금보험료 6,700만 원을 납부해 5억 5,000만 원의 연금 을 타게 된다. 기업연금까지 연금수입은 7,000만 ~ 8,000만 원에 달한다. 납부액에 비하면 수익률이 8.3배나 된다.

이 세대는 자신들을 일본 경제의 주역란 자부심에 이 연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돈으로 생각한다. 젊은 시절 낸 연금이 국가기관 투자로 기업을 지원했고, 늘어난 돈을 정당히 받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청년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85년 이후 출생자는 연금보험료 납부액의 2.3배만 연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인구 분포에서 고령층이 늘어나며 노인부양금도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인 일자리만 늘어나 청년층 주머니 사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 결과 소비 비중도 고령층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는 것 중 하나는 노인이 주 수요층인 고급 양걍과 외국산 초콜릿이고, 다양한 종류의 고급 장아찌를 판매하는 업체도 성황을 이룬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노년층을 겨냥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텔스 마케팅 비법도 널리 퍼져 있다.

온 가족이 식사해도 지갑을 여는 건 대개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다. 한때 해외여행을 즐기던 일본 젊은이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방문하는 건 그림의 떡이 다름없을 정도로 경제력이 하락했다. 노년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한편 일본 정부도 재정 부족 해결을 위해 노인 부담을 늘리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고령자 투표 참여율은 30%로 세대 중 가장 높아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크다. 연금 개혁에 오히려 권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한 노년층은 분노의 화살을 청년층으로 돌렸다.

일본에서 청년층을 지칭하는 말 중 '유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사고력과 표현력, 인성을 강조한 '유토리 교육'을 받은 1987년부터 1999년 출생자로, 당시 일본 교육계가 '경쟁주의 타파', '개성 육성', '창의력 함양'을 목표로 했던 것과 달리 학력 저하를 겪은 세대로 규정되고 있다.

노령층을 이들을 "도전정신이 없고 힘든 일은 기피하며 남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전통을 무시하고 파격적인 것만 추구한다.", "책임보다 권리를 우선한다."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받는 연금을 부담하는 건 이들이다. 이에 청년층도 노령층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등 감정의 골을 깊어지기만 한다.

 

집단 괴롭힘, 윤일병 사망가선 가해자들
집단 괴롭힘, 윤일병 사망가선 가해자들

2. 이지매, 왕따 - 포용과 배려의 실종
 
9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의 이지매 문화에 충격을 받고 분개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왕따 문제가 불거지며 이지매와 왕따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는 집단 따돌림 문제로 자리 잡았다.

사전적 의미는 다르다. 사전에서 왕따는 "집단 따돌림", 이지매는 "집단 괴롭힘"으로 정의해 이지매를 좀 더 가학적인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따돌리는 행위 역사 괴롭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기에 국내 매체에선 명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진 않는다. '왕따'로 표현되는 사례 역시 높은 폭력성과 범죄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평론가 르제 지라르는 이러한 집단적 배척 현상에 대해 "공동체 내부에서 폭력이 발생하는걸 막기 위해 희생양을 정해 괴롭히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반목을 해소하는 방법이란 거다.

왕따 현상에 대한 많은 연구는 르네 지라르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집단 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게 왕따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 원인이란 결론을 내렸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교권 약화로 인한 집단 내 서열 불안정성, 청소년 스트레스 해소 방법의 부재, 가정폭력 등 원인은 다양했다.

배척 대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과거엔 불량 학생, 편모가정 자녀, 저소득층 자녀, 장애인 등 남들에 비해 모자란 면이 있는 급우를 왕따 대상으로 삼았지만, 현재 왕따는 내성적인 성격이나, 급우와의 말다툼, 자신도 모르게 퍼진 헛소문 등 아주 작은 이유로 인해 발생한다. 포용과 배려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거다.

한때 일본의 이지매는 학급뿐 아니라 직장 등 성인이 활동하는 집단에서도 만연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왕따와 구분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직장내 괴롭힘, 따돌림이 사례가 발견되며 이와 같은 구분을 하기 힘들어진 상황이다. 포용과 배려의 실종을 청소년층에만 국한시킬 수 없게 된 거다.

미쓰비스의 군수사업으로 화려하게 성장했던 하씨마섬,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미쓰비스의 군수사업으로 화려하게 성장했던 하씨마섬,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3. 우경화의 내막은 - 경제 성장에 대한 향수

일본 우익은 매우 다양한 부문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위시한 일본 자민당은 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당으로 파벌이 매우 다양해, 자민당 소속임에도 식민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주장하는 인물도 많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일본 내 주류 세력이 급격히 보수화되고 오랜 경기 침체로 사회 불안이 심화되자, 아베 신조 등 극우 성향 정치인이 득세하고 있다. 

일본 경찰 용어엔 '행동 우익'이란 명칭이 있다. 국내 언론에서 혐란 가두 시위를 벌이는 집단이 이 범주에 든다. 이들은 일본 제국 시대를 찬양하며 국수주의적 프로파간다를 내세운다. 집단에 따라 재계와 보수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반공주의를 제창하는 것에서부터, 한국인과 재일교포에 불리한 선전을 하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이들을 만만히 볼 수 없는 건 대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익 단체를 지원하는 그룹으론 미쓰비시 그룹, 이스즈, 캐논, 마루베니, 일본담배주식회사, SMK 등이 있다. 

한편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넷 우익'들도 있다. 이들은 태평양 전쟁을 서구 열강에 맞서 아시안인을 해방시킨 성전(聲戰)으로 생각하며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현 자민당 정권마저 미국의 영향 아래 세워진 좌파정권이라 여기며 국민에게 반일 사상을 세뇌하는 반일적 행위를 한다고 비난한다.

국내에선 과도한 우익 성향과 반사회적 행동으로 지탄을 받는 '일베'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당과 기업, 온라인 세력까지 극우 성향을 보이는 건 일본 역사의 전성기를 '일본 제국'시기로 여기고 있는 탓이다. 일본이 미국에 의해 근대화를 시작한 후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일본은 유럽에 전쟁물자를 수출하며 호황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일본제국은 전근대적 미성숙함이 남아있는 국가에 불과했고, 추축국에 서 연합군을 상대로 총력전을 벌인 결과, 태평양 전쟁 후엔 재기가 힘든 상황에까지 몰렸다.

하지만 현재 일본 대기업 대부분은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수출하며 부를 쌓았고, 한국전쟁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얻었다. 우익 집단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권과 군사력 증강 시도도 기업의 경제적 이권이 개입과 무관할 수 없다. 2014년 기준 일본 방위비용은 50조를 돌파했고, 많은 비용이 군수물품 개발과 도입에 쓰였다.

 

그가 꿈꾸던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다.
그가 꿈꾸던 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다.

4. 한국의 앞길, 일본처럼 되는건 막아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보수화하는 한국 사회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일본의 우경화를 욕하지만, 한국 역시 같은 절철을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의지가 항상 국민의 의지에서 나온다고 자신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싱가포르 수상이던 리콴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동아시아 국가엔 민주주의가 적응하지 못한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끝까지 민주주의의 가치와 가능성을 역설한 김 전 대통령의 주장과 상반된 것이었다. 그리고 민주국가가 된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독재국가가 되었다. 아주 성공한 독재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지난 10년 간 일본의 실패를 따라갔다. 이건 결코 국민이 원한 결과가 아닐 거다. 아버지와 자식이 다투고, 급우와 직장동료가 서로 살인을 저지르며,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국민은 자신도 모르게 이 흐름에 동조해 왔다. 민주주의가 실패했다 생각해도  좋을만한 상황인 거다.

민주주의의 힘은 국민의 '앎'에서 나온다. 얼마 전 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에게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제국의 연맹이 어디였나 물었더니 대다수가 '미국'과 '영국'을 꼽았다. 우익 기업과 정치인에게 속고 휘둘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부디 한국이 그런 국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