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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성범죄를 사업화하다... 이 시대의 '피핑 톰'

화가 존 클리어가 그린 고디바 부인
화가 존 클리어가 그린 고디바 부인

 

말을 걸어보려는 용기 대신
고성능 카메라와 녹음기를 준비해
주파수는 항상 그녀의 비밀에 맞춰
자 이제 사랑을 시작해 볼까

밴드 아침 - '피핑 톰 中-

 

피핑 톰, 관음증의 대명사가 되다

'피핑 톰'은 본래 유럽 지역 전설에서 등장하는 엿보기를 좋아하는 인물로, 11세기 '고디바 부인' 일화에 각색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고디바 부인은 영국 코벤트리 지방 영주의 아내로, 남편의 과세 정책이 지나치게 가혹함을 주장하며 농민 편에 서서 세금을 줄여달라 탄원한 의기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영주는 고디바 부인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였으며, "만약 네가 나체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하겠다."라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당시 고디바 부인은 고작 16세의 어린 소녀였으며, 대중 앞에 알몸으로 나서는 건 예나 지금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농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머리카락으로만 몸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았다. 예상과 달리 거리는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영주 부인의 결정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농민들이 전부 집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시위를 응원했기 때문이다.

딱 한 사람. 양복점 주인 톰만이 본성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창밖으로 고디바 부인의 나체를 훔쳐보려 했으나 그 순간 눈이 멀어 장님이 되었다. 이후 영국에선 다른 사람을 엿보는 호색가를 가리켜 '피핑 톰(Peeping Tom)'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톰은 관음증을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관음증, 성매매와는 또다른 문제

관음증(觀淫症)은 성 도착증 중 하나로 정신병의 일종으로, 타인의 특정 신체 부위나 성적 행동을 촬영하며 큰 성적 만족을 느낀다. 인간이라면 성적 지향에 따라 타인의 나체에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게 당연하지만, 이들은 관음 행위에 집착하며 훔쳐보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촬영까지 하는 등 범법 행위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구분해야 한다. 개인적 공간에서 포르노를 시청하며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합의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성적 뉘앙스가 담긴 사진이나 영상, 음성 등을 만드는 건 엄연한 범죄행위다.  

도촬 행위를 불법 포르노 제작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 안된다. 포르노 사업을 비롯한 매춘 행위는 타 범죄행위와 달리 효용에 의한 피해자-가해자가 나눠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강도, 절도, 사기 등 일반적 범죄는 가해자가 불법 행위로 효용을 얻는 반면 피해자의 효용은 줄여 불균형을 초래한다. 하지만 성매매는 성을 산 사람은 성적 만족감을, 성을 판 사람은 재화를 얻기에 쌍방 모두의 효용이 상승한다. 가해자-피해자 구도 역시 명확하지 않아 규제 근거를 윤리적 관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매춘이 갖는 특징은 성매매의 산업화를 암시한다. 구매자-판매자 양측 효용을 증가시킨다는 점은 산업의 기본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춘을 합법으로 여기는 국가도 상당히 많으며 국내에서도 성(性)적 자극을 유발하는 섹스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성매매를 '노동'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면 몰카 촬영과 유포는 명백하게 피해자의 인격적 권리를 침해하며, 심각한 심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 한국에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조항에 해당돼 강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사실상 성폭행, 성회롱 등 타 성범죄와 다르지 않게 취급되고 있다. 최근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도찰 영상을 유포하는 사례가 보도되고, 경찰이 유명 워터파크 여성 탈의실을 도촬 및 유포한 용의자를 검거하는 등 도촬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며 경각심 또한 커지고 있다.

 

워터파크 도촬 영상에 찍힌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워터파크 도촬 영상에 찍힌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도촬물 거래는 범법 행위의 사업화를 암시해

워터파크 몰카 사건은 도촬자가 여성이었다는 점, 도촬의 목적이 성적 만족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의자는 온라인 채팅으로 알게 된 신원을 모르는 한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기로 하고 영상을 찍어 넘겨줬다고 진술했다. 도촬 영상이 판매되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은, 일반적 범죄 역시 성매매처럼 산업화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동의 없이 촬영한 포르노로 시장을 형성하는 건 불특정 다수를 납치해 성적 착취를 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몰카 범죄는 지난 3년간 2배나 증가했다. 고성능 모바일 기기의 보급과 촬영장비 소형화가 증가 추세를 가속했지만, 인간의 기본적 성욕이 이전보다 강력해졌다고 보긴 힘들다. 도촬 영상의 공급이 늘어나는 건 시장이 형성되며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과 텀블러(Tumblr)를 비롯한 SNS엔 도촬 음란물 판매 선전물이 가득하며,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도촬 영상을 거래하는 커뮤니티도 찾을 수 있다.

음란물은 흔히 '야동'으로 불리며 희화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기존 포르노 시장에선 야동을 웃음거리로 삼는 걸 재미로 치부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커지고 있는 몰카 시장을 일반적 포르노로 여겨 근절하지 않는다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혹은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비극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중세의 '피핑 톰'처럼 개인적 욕망에 휘둘리다 눈이 머는 순진하고 단순한 자들이 아니라 잡기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