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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처럼 부하직원 조인트 까면 기업 매출 늘어나나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  인류의 첫번째 발명은 '폭력'이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 인류의 첫번째 발명은 '폭력'이었다.

회사 내 폭력, 사라져야 할 이유가 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작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는 다소 지루한 영화다. 화면 전환은 느리고 대사는 적어 성질이 급한 사람은 조바심이 날 정도다.  SF영화라고 기대해서 봤더니 초반 한참 동안 유인원이 싸우는 모습만 나와 어리둥절하기도 하며, 함축적 표현이 많아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한 유인원이 죽은 동물의 뼈를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적 세력을 물리쳐 조직의 수장이 되는 씬이다. 그가 하늘로 던져 올린 뼛조각은 화면이 전환되며 먼 미래의 우주함정으로 돌변한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폭력성이 통치 수단으로 남아있음을 함축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다.

폭력은 효과가 빠르다. 협상과 회유, 성문화 된 법률 등 세련된 형식의 권력과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폭력은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치 수단이다. 6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기를 보낸 한국에 아직도 폭력적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물론 폭력을 옹호해선 안된다. 그것이 집단내 권력적 형태의 폭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폭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며, 정상적 사고를 갖춘 사람이라면 가해자가 되는 것도 꺼려할 것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 겪은 폭력에도 분개하고 동정하며 슬픔을 느낀다. 폭력을 악으로 규정하는 건 보편적이며 윤리적인 관점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윤리보다 성과가 중시되는 환경이라면 어떨까? 전쟁과 같은 비정상적 상황에선 윤리적 판단보다 승패가 중요하며, 현대사회에서도 기업이 성과를 핑계로 근로자에 부당한 대우를 하거나 초법적 행위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장 경제가 정착하고 기업이 사회구조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자 성과주의적 풍토도 단단히 뿌리를 박게 되었다.

윤리와 선(善)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도 눈앞의 성과를 놓치지 않으려면 선과 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리의 손을 들어주려면 폭력에 대한 윤리적 평가 대신, '폭력이 조직 성과를 저해한다.'라는 명제를 증명해 그것이 효율적 방법이 아님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회사 내 폭력은 터부가 돼 기업을 좀먹는다

직장인 6명 중 1명이 "회사에서 맞아본 적 있다."라는 충격적 설문 결과가 나왔다. 주먹은 물론이며 상대방이 꼬집고 할퀴었다는 사례도 있었고, 심지어 서류 같은 도구를 활용하거나 발로 차고, 던진 물건에 맞았다는 응답도 있었다. 시대는 2015년이지만 그들이 겪은 노동 환경은 1970년대를 무색케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직장 내 폭력 가행자 대부분이 상사(75.3%), 임원 및 CEO(23.6%)등 상급자였다는 점과, 피해자 57.5%가 신체 폭력을 당하고도 "그냥 참았다."라고 응답한 점이다. 이유는  "어차피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상대와 갈등을 겪기 싫어서.",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등이었다.

LG경제연구원은 이 같은 '상급자에 대한 반발', 혹은 '내부 고발'을 조직 내 '터부'라고 설명했다. 터부는 위법행위나 성, 종교,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 등 상식적 금기가 아닌, 암문적으로 사업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은밀한 요소다. 위험을 겪은 경험이 특정 행동의 금지로 굳어진 경우가 많으며, 언급 자체가 꺼려져 검증이 어렵고 사람마다 인식하는 정도도 다르다. 사회적 쟁점화가 되지 않은 차별이란 의견도 있다.

가령 과거 한 사원이 상급자의 폭력에 반발해 대립하거나 내부 고발을 했는데 그가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는다면, 내부 고발 행위는 그때부터 '터부'로 자리 잡게 된다.

터부가 조직에 남기는 해악은 이미 다방면으로 연구가 되었다. 학자들은 터부가 타인의 지적 이전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삼가게 해 창의와 혁신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육상선수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것처럼 불필요한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구성원이 터부를 악용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어렵고 위험 부담이 큰 일을 터부로 규정해 꼭 해야 할 업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귀에 걸명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근절하기도 쉽지 않다.

 

터부를 만드는 건 '신성함'과 '두려움'

터부를 없애려면 우선 터부 갖는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그의 논문집에서 터부를 '신성한' 것과 '두려운'것으로 구분하며 성역, 신탁, 상처, 재앙의 네 가치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역 : 건드려선 안 되는

미국 에너지 회사 엔론(Enron)엔 에너지 트레이더 집단이란 성역이 있었다. 이들은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않아 장부상 이익을 미심쩍게 보는 사람도 많았으나, 경영진의 비호를 받아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외부 회계법인이 이들의 횡령 가능성을 지적했을 때도 별 다른 제재를 받지 못했다. 이 치외법권적 성역 탓에 엔론은 2001년 엄청난 파문과 함께 파산했다. 트레이더의 부실과 부정에 의한 것이었다.

성역은 주로 회사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부서나 사업, 혹은 전략적 목적으로 힘이 실린 곳인 경우가 많다. 물론 조직엔 역량을 담아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들을 향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터부가 된다면 조직이 곪아들어가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신탁 : 더해도 덜어도 안 되는

50년대 후반 중국 국가주석이던 마오쩌둥은 전국민적 숭배를 받은 덕에 말 한마디가 신탁과 같은 권위를 가졌다. 1958년, 그가 들쥐, 파리, 모기, 참새를 없애는 위생운동을 주창하자 전 국민의 그의 뜻을 따랐고, 결국 중국 전역에 참새 씨가 말라버렸다. 참새가 사라지자 오히려 해충이 창궐해 대기근이 발생했고, 이는 마오쩌둥에 대한 지지마저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조직에서 경영진이나 구루(guru)등 권위를 지닌 사람이 남긴 신탁과 같은 말을 맹신한다.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구루의 말은 얻을게 많지만, 절대적 금언이어서는 안된다. 마오쩌둥의 예처럼 진정한 의미와 맥락이 사라지고 단어 하나하나의 뜻에만 매달린다면, 상황이 돌변했을 때 구성원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상처 : 손대면 덧나는

13세기 몽골은 고려를 침공해 한반도를 점령했으나,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수뇌부를 꺾지 못해 30년을 매달렸다. 건조한 내륙 출신인 몽골인들이 물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실패가 물에 관련한 금기가 되었고, 그것이 해전에 대한 회피와 소극적 태도로 이어져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항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해는 정신적 외상(Trauma)이 된다. 정신적 외상에 따르는 반응 중 하나는 '회피'다. 특히 최고경영자 등 상사의 실패는 언급을 피하는 경우가 많아 터부화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반성과 극복 의지 없이 회피만 한다면 그 조직은 결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없다.


재앙 :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선룡의 징비록을 보면 전쟁 이전에 많은 선각자들이 왕에게 왜적의 침략 가능성을 간언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평화에 젖은 유약한 관료들은 이를 외면하고 언급을 터부시 했다. 그 결과 조선은 대비 없이 전쟁을 겪게 되었고 수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한 산업을 지배하던 우량기업이 산업 변화에 맥없이 몰락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재앙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산업 판도의 변화가 눈 앞에 보이고 대응할 시간과 자원이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몰락한 거다. 그 이면엔 지금의 편함을 끼지 않기 위해 미래를 외면한 심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쁜 터부'의 공통점...옛 시대와 비효율로 회귀 

어느 조직이나 상층부로 갈수록 터부의 특징인 성스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권위적 위계문화가 강한 한국 기업은 조직 상승에서 비롯된 터부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서튼 교수는 "조직에서 무엇이 신성시되고 무엇이 금기인지를 분명히 정리해야 좋은 리더."라는 말을 했다. CEO나 임원, 혹은 부서의 수장과 같이 리더를 맡고 있는 사람은 비효율을 낳는 터부를 골라내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이 지닌 나쁜 터부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조직 내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와 고객을 향한 진취적 금기는 찾기 어렵다. 터부의 지배를 받을 때 조직은 점점 과거를 향하게 되고 고객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직장 내 폭력도 마찬가지다. 70년대 정주영 회장이 직원들 쪼인트 까고 다닌 이야기를 지금 하며 부하직원에게 폭력을 휘둘러봤자 기업 매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 있는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결과만 초래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