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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터키,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 경제 회의론 언급하긴 아직 이르다. 지난 20년간 이룬 정치 경제적 진보 무시하지 말 것

 

지난 2013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
지난 2013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

1990년대 이래 20년간 세계경제의 화두를 점해온 '신흥경제국들의 시대'는 이제 끝났는가?

터키, 인도네시아 등은 물론 브릭스(BRICs)에 속한 브라질, 러시아의 경제가 수년 전부터 추락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경제도 기대치를 밑도는 데다 최근 중국마저 경제 침강이 완연해지자 한때 세계경제의 총아였던 신흥경제들의 장래에 대한 회의론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신흥시장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은 틀렸다. 사실은 이제 막 초기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고 제프리 가튼 전 예일대 경영대학원장이 주장하고 나섰다. 여러 큰 신흥경제국들이 앞으로도 세계 무역과 기후변화, 세계평화 등 모든 세계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제통상담당 상무부 차관을 지낸 가튼 교수는 31일(현지시간) 외교안보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신흥시장의 미래'라는 글에서 신흥시장들이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눈앞의 위기를 보지 말고 그것이 끝난 후 "다음 장(章)"을 볼 것을 주문했다.

신흥경제국들이 현재 겪는 정치적, 경제적 후퇴들은 역사적으로 모든 강대국의 성장 과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던 것들로 "미국도 산업화 과정에서 재정위기를 잇따라 겪었다"는 것.

가튼 교수는 신흥경제들이 한창 뻗어나가던 1990년대 중후반의 세계경제 여건이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신흥시장들의 직선적인 발전을 예측했던 전망치 때문에 신흥경제들의 현황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흥시장들에 대한 과거의 지나친 낙관론자들은 "정치발전이든 경제발전이든 본래 순환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무시"함으로써 건전한 판단을 그르친 것이라는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팀장 루치르 샤르마의 견해도 가튼 교수는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상무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신흥경제국 정부와 기업인들에게 무역과 투자를 위한 자유로운 시장만 만들어주면 다른 좋은 것은 다 따라오게 돼 있다는 식으로 '흰소리'친 것을 반성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에 이은 부시 행정부도 같은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파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서야 미국 모델이 얼마나 망상이었는지 모두에게 분명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신흥경제국들이 위기를 맞았고, 필요한 정치·경제개혁의 길도 순탄치 않으며,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성장둔화 등 세계경제 여건 역시 악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신흥경제들의 중심 역할에 대한 전망을 유지하는 것은 이들 나라가 지난 20여 년간 정치·경제적으로 거대한 진보를 이룬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인종격리 국가로부터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고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통제 경제로부터 활력있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변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새로운 사회경제 기반시설 구축은 놀라울 정도이며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의 중산층이 두터운 소비층을 이루고, 수억 명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는 것.

또 "신흥시장들이 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의 세계시장 붕괴라는 2개의 거대한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때마다 이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가튼 교수는 말했다.

변동환율제로 전환해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높였다든지, 이전보다 신중한 부채관리를 통해 민간부문의 파산을 줄이는 등의 정책들은 이런 위기를 거치면서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다.

구체적인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신흥시장의 비중이 1993년 35%에서 2013년엔 약 50%로, 그리고 최근 위기 직전엔 50%를 상회할 정도로 커졌다.

외환보유고를 보면, 선진시장 대비 신흥시장이 지난 2000년 50%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2배 가까이에 이른다.

그는 브라질이 현재 심각한 경제후퇴를 겪고 있지만, GDP 대비 대외채무가 지난 2002년 수준의 절반도 안되고, 대외채무 대비 외환보유고는 2002년 수준의 4배에 이르며, 한국은 1997년 외환보유고가 대외채무의 13%밖에 안됐으나 현재는 83%까지 높아진 사실 등도 들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상태"라고 그는 강조했다.

" 내가 잠을 설치는 것은 중국의 위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일어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도 중력의 법칙에 맞설 수는 없다. 내 관심은 그 (위기의) 끝에 무엇이 있느냐이다. 중국이 실수로부터 배워 더 강력한 개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잘못된 정책들을 답습해 내부지향적이 되면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질 것인가? 이런 물음으로 밤을 새운다"

중국의 토지와 빌딩 등 부동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한 홍콩 부동산 재벌의 말이라고 가튼 교수는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