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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맞붙었다.. 정부 외교 역량 시험대에 오를수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좌) /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
오바마 미국 대통령 (좌) /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

중국 역사 소설 삼국지 도입부는 한나라 황실을 차지한 권력자 동탁과 그를 몰아내려고 전국에서 모인 제후들간의 전투로 시작한다. 동탁은 한나라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조정을 사치와 향락으로 물들이는 전형적 악인으로 그려지지만, 그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은 영웅들의 속내도 그리 정의롭진 못하다. 대의명분이란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각자의 이득을 취하느라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합군은 내분과 권모술수로 삐걱대다 동탁을 처치하지 못하고 붕괴되어 버린다. IS격퇴에 나선 미국과 러시아의 꼴이 딱 그 모양이다.

러시아, 왜 이제와서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는 이유는?

러시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동문제에서 '제 3자'위치를 고수했다. IS격퇴에 나선 미국이나 유럽,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모두 러시아의 '적성국'이었으며, 유럽과 달리 직접적으로 난민이 유입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직접적 중동 군사개입은 1989년 아프가니스탄 퇴각 이후 26년 만의 일이다.

러시아가 IS격퇴에 개입하는 속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IS에 유입되는 외국인 조직원의 주공급처로 중앙아시아가 떠오르는 탓에 체첸 지역에 반(反) 러시아 성향의 IS 지부가 결성된 조짐이 보이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이 러시아에 실체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세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입장에선 자국을 위협하는 IS를 원천 봉쇄하고자 본거지인 시리아에 진입할 수 있는 명분이 선 것이다. 난민 사태로 난처해진 유럽의 상황이 러시아가 시리아에 개입하는데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돈독한 우방 중 하나다. 1944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당시 소련은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해 시리아를 유엔 창설멤버로 참여시켰고, 이후 시리아 영토에서 프랑스와 영국군을 철수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시리아는 반(反)서방 친(親)소련 정책을 펴며 이스라엘과의 대치 국면에서 소련에 크게 의존했으며, 자국 타투르스 항 해군기지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소련 붕괴 이후 세력이 중앙아시아 일대로 축소된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지금도 러시아는 시리아 무기 수입을 50%이상 담당하는 주요 공급국이며, 시리아가 내전에 쉽까이고 나서도 비밀리에 아사드 정권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서방이 지원하는 반군이 권력을 장악하면 러시아는 거대 무기 수출 시장 가운데 하나를 잃게 될 위험이 있다.

지난 2011년 미군에 의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중요한 우방국 중 하나이던 리비아를 잃었다는 점, 그리고 서방이 시리아를 장악하면 다음 표적은 역시 러시아의 주요 우방인 이란이 될 거란 점도 러시아가 시리아 수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라는 분석이다.

 

'지옥을 보여주겠다.'라는 아랍어 문구가 쓰여있는 전투기 미사일
'지옥을 보여주겠다.'라는 아랍어 문구가 쓰여있는 전투기 미사일

정말 IS격퇴가 목적인가?... 미국과 대립각 세워

미국 입장에선 러시아의 개입이 나쁠 것 없었다. 시리아 내전이 '숙적'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이었기에 지난 5년 간 별다른 해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개입한다면 소통 창구가 되어 협상이 가능할 거란 예측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러시아는 미국과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1일 IS가 아닌, 이슬람주의 반군의 주둔지를 공습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이날 첫 작전에서 미국에 공습 계획을 통지하고 시리아 영공에서 피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자체 공습을 계속했다.

이에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대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표현했고, 존 케리 국무장관이 "러시아가 다른 온건파 반군을 폭격할지에 대해 미국은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발언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지난 29일 70차 유엔총회에서 시리아 내전 사태 해법에서 의견 충돌을 보인 바 있었다. 오바마는 아사드 독재 정권 축출을 목표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온 반면, 러시아는 IS와 싸우기 위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독재자가 수천 명의 국민을 살육했을 때, 그것은 한 국가의 내정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제사회와 협력해 시리아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즘에 정면으로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시리아 정부와 군대에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생각한다"며 "오직 아사드 대통령의 군대와 쿠르드족 민병대만이 시리아에서 IS 및 다른 테러단체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전혀 다른 의견을 보였다.

더불어 푸틴 대통령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에 유일한 지배 중심이 부상했다. 자신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우 강력하고 뛰어나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유엔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믿고 있다"고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구도가 재연된 것이다.

 

지난 2013년 한국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을 영접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2013년 한국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을 영접하는 박근혜 대통령

한국에겐 미국도 중요하고 러시아도 놓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가시화되면 한국의 입장도 난처해질 수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패권'경쟁을 드러내지 않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지금도 반(反)서방 진영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러간 경제 교류는 1990년 수교가 이뤄진 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약 134배가 증가했으며 교역 구모 순위론 11위를 차지한다. 대(對)러시아 수출 상위 품목 대부분이 자동차, TV등이라 제조업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같은 기간 한국의 대(對)러시아 직접투자는 약 15배 증가해 1.35억 달러에 달하며, 연평균 12%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체 해외 직접투자의 0.4%를 차지한다. 러시아의 대(對)한국 투자는 약 147배가 증가한 0.3억 달러로, 연평균 23.1%씩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에 있어 한국은 극동지역 제 1 수출국이자 제 3 수입국, 제 10위의 투자국이다. 이외에 인적교류나 관광교류액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러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하며 러시아 지역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구현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며, 이는 러시아의 '신 동방정책'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앞으로 교통,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위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에 불이 붙는 건 분명 좋은 조짐은 아니다. 지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과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였던 것처럼, 정부의 외교적 역량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