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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FTA 'TPP협상' 타결... 자동차 업종 '빨간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경제통합체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메가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협상이 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5일 마침내 타결됐다.

12개국 간 잔여쟁점에 대한 후속협상 마무리, 각국 내 비준절차 완료 등 필요한 과정을 거쳐 TPP가 공식 발효될 경우 글로벌 무역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 무역·통상 장관들은 이날 오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엿새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의약품 특허보호 기간을 비롯한 핵심쟁점들을 일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주도국인 미국을 비롯한 협상 참여 12개국은 자국 의회의 비준 동의 등 후속 조치에 곧바로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기자회견 모두발언을 통해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면서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며, 포용적 발전을 촉진하고 혁신을 북돋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타결은 2010년 미국이 호주·베트남·페루 등과 함께 TPP 협상에 공식으로 참여한 이후 5년여 만의 일이다.

TPP는 원래 2005년 뉴질랜드·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 4개국 간의 'P4 협정'에서 출발했지만 2008년 미국이 호주, 페루와 함께 전격적으로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 주도의 다자 FTA에 바뀌었다.
 
이어 2010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2012년 멕시코와 캐나다가 각각 협상에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일본이 막차로 합류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규모의 FTA가 됐다.

2011년 기준으로 인구 7억8,000만 명, 명목 국내 총생산(GDP) 26조6,030억 달러, 무역규모 10조1,850억달러다. 전 세계 명목 GDP의 38.2%, 무역규모의 27.8%를 각각 차지한다.

명목 GDP로만 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경제통합체이며, 무역규모는 유럽연합(EU)이 11조7,000억 달러로 TPP보다 약간 많다.

하지만, TPP 참여를 저울질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후발대로 참여할 경우 그 규모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앤드루 롭 호주 통상장관은 이번에 타결된 TPP가 "21세기 무역의 구도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협상 타결 이후 후속 절차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비준절차를 놓고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앞으로 진행될 절차는 협정문 번역과 각국 의회에 대한 협정문 송부, 그리고 각국 의회의 처리 또는 비준동의다.

이런 가운데 후속 절차에서 가장 큰 변수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협정문 내용이다.

참가국 의회에서 협정문을 받은 뒤에는 협정 내용이 일반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고, 협정 내용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업종 종사자는 물론 협정 내용이 이해관계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각국 정치인들에게서 동시다발로 반발이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 의회의 비준과정이 간단치 않아 TPP 협정의 의회 통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 의원들은 TPP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TPP 때문에 특정 업종이나 상품에 대한 미국의 경쟁력이 유지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이나 서한을 발표하며 협상 대표단에 압력을 가해 왔다.

더욱이 내년 대선과 맞물려 민주·공화 양당 간 정치공방으로 흐를 경우 비준 절차가 더 늦어질 수 있고, 이는 일본을 비롯한 각국 의회의 심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4년여 동안 미국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던 한미 FTA의 사례를 거론하며, 여소야대 상태면서 대선을 1년남짓 앞둔 미국 정치권에서 TPP가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을 뚫고 12개국 의회를 모두 통과하면 TPP는 전 세계 GDP의 약 37%, 교역규모의 약 25%를 차지하는 거대 자유무역협정으로서의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편, TPP 협정 타결 후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피해를 우려하면서도 발 빠르게 현지화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트라(KOTRA)는 한국은 TPP 1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양자간 FTA를 체결한 상태라 미국 시장에서는 사실상 일본과의 경쟁이 새롭게 떠오른 주요 변수라고 분석했다.

조사에 따르면, TPP 협상 최종 비준 시 자동차 부품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TPP 발효로 관세가 철폐되면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코트라는 "다만 TPP 역내 국가인 미국이나 멕시코 등에 공장을 둔 기업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우리 기업의 현지화 전략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동차 분야는 닛산, 마쓰다 등 일본에서 직수입하는 메이커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산 차량의 수출에 다소 영향이 생길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섬유와 의류 업종은 이번 TPP 협상 타결을 계기로 현지화 전략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코트라는 특히 관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TPP 가입국인 베트남을 활용하려는 한국 기업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일부 기업은 원사 공장을 베트남에 짓기로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업종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 업종도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산 TV나 냉장고가 약간의 가격 인하 효과를 얻겠지만,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IT) 주력 품목은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지금도 관세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직접적으로 경쟁하지 않는 철강 업종도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제품은 가격대가 높아 관세 인하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

현지에 진출한 철강업체 C사 관계자는 "중국과 대만 업체들이 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기자재 등 주로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업종들도 중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조사됐다.

김재홍 코트라 사장은 "TPP로 인해 일부 업종의 피해가 불가피하겠지만 이미 우리 기업들이 현지화, 제품차별화로 대응하고 있다"며 "TPP 타결에 따른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해외 진출 기업의 TPP 활용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