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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재벌 오너 순환출자 문제... 한국 기업과 다를거 없네?

 

폴크스바겐의 전 CEO 마르틴 빈터코른과 전 감독이사회 의장 페르디난트 피에히
폴크스바겐의 전 CEO 마르틴 빈터코른과 전 감독이사회 의장 페르디난트 피에히

족벌 기업 순환출자 구조..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스캔들로 CEO를 비롯한 그룹 주요 임원을 잇달아 해임하자 폭스바겐 창업자의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피에히는 1993년 폭스바겐 감독이사회 의장직을 물려받아 20년 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폭스바겐 제국을 좌지우지하다가 지난 4월 의장직을 사임한 인물이다. 빈터코른 전임 CEO를 축출하려다 실패해 스스로 의장직에서 물러났다는 분석이지만, 포르쉐와 폭스바겐이라는 두 브랜드의 인수과정을 고려하면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포르쉐는 천재 발명가 '페르디난드 포르쉐'가 창업을 한 뒤 그의 후손들이 오너를 맡고 있는 족벌기업이다. 페르디난드 포르쉐는 딸 루이스 포르쉐를 유명 법률가인 안톤 피에히와 결혼시켰고, 지금 주목받고 있는 페르디난드 피에히 역시 포르쉐 집안의 외가 쪽 혈통이다.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이 가진 지분은 전체의 90%에 가깝다. 70년대엔 기업 경영권을 두고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간 갈등이 생겼고, 이에 기업 경영권을 외부 전문 CEO에게 맡기는 신사협정이 맺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족벌 오너의 영량력은 절대적이다.

피에히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폭스바겐 AG 의장직을 맡았다. 독일 작센주의 '폭스바겐 법'은 주주가 아무리 주식을 많이 가져도 의결권을 20% 이상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어 임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에히의 개인적 의결권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경 폭스바겐 법이 깨졌다. 카타르 등 중동 자본이 폭스바겐 지분을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피에히를 주축으로 한 이사회가 폭스바겐이 중동 기업이 되면 안된다고 주장하며 작센주에 의결권 제한 규정을 없애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의결권 제한이 사라지자 피에히와 포르쉐 일가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업 포르쉐SE 명목으로 폭스바겐 지분을 25%까지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피에히가 여전히 폭스바겐AG의 의장이었기에 주식 발행과 가격 결정에 대한 의결권이 있어 매우 저렴하게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독일 정부가 뒤늦게 매입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시기는 늦었고, 불과 5년 만에 포르쉐SE가 인수한 폭스바겐AG 의결 주식은 50.47%까지 늘어났다.

포르쉐SE가 적극적으로 폭스바겐 주식을 사들인 탓에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고, 포르쉐SE의 순수익은 2007년 연 58억 유로로 6배가량 뛰어올랐다. 동시에 피에히는 폭스바겐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물'이 되었다. 사실상 포르쉐 집안이 폭스바겐을 집어삼킨 것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포르쉐SE가 폭스바겐 주식을 저렴하게 인수하긴 했지만, 기업 지분 절반 이상을 구매하는데 든 비용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피에히는 폭스바겐AG자금을 이용해 이번엔 또 다른 자회사 포르쉐AG의 지분 100%를 구입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포르쉐AG의 지분은 포르쉐SE가 100% 가지고 있었는데 이 지분을 폭스바겐AG가 구입한 것이다. 결국 폭스바겐이 포르쉐 가분에 지불한 구입비용은 80억 유로가 넘었던 셈이다.

겉으로 보기엔 포르쉐를 폭스바겐에 팔아버린 꼴이었지만, 피에히는 여전히 두 회사의 경영권을 갖고 있었다. 포르쉐SE가 폭스바겐AG의, 폭스바겐AG가 포르쉐AG의 지분을 갖고 있으니, 포르쉐SE의 오너이자 폭스바겐AG의 대주주인 피에히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결국 피에히와 포르쉐 가문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두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수익에서도 현금 12조 원 이상을 거둬들인 셈이다. 이는 한국 재벌 오너가 적은 지분을 순환출자해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방법이다.

그에 대한 작센주와 노동조합의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2007년 그가 축출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도 노동조합 대표와 작센주 정부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검찰의 수사, 규제당국의 조사, 투자자와 차주들의 소송이 이어지면서 늪에 빠진 폴크스바겐에서 포르셰와 피에히 일가의 입김은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폭스바겐 본사에 나타난 것은 유배 상활을 끝내고 다시 폭스바겐 경영에 손을 대겠다는 명백한 신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