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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농민들은 왜 피해 보조금을 받는데도 투쟁 시위를 하는 걸까?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논을 바라보는 한 농민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논을 바라보는 한 농민

매년 1조원?, 피해 보조금이 농민의 민생 구제만을 위해 쓰이는 건 아니다

1999년, 한국은 칠레와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었다.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시장을 개방하기 전, 이전부터 FTA 경험이 많았던 칠레와 공부 삼아 첫 FTA를 맺기로 한 것이다.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통과되던 날, 전국에서 농민 3천 명이 모여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은 "국회로 진출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인도 옆 차로를 완전히 점거했고, 빈 병과 깨진 보도블록을 경찰에게 던지고 소화기를 발사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저지했고, 결국 양측에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비극은 FTA가 타결될 때마다 되풀이됐다. 2007년 한-미 FTA 때도 6천 여 명이 모인 시위가 폭력사태로 변질되어 조명을 받았고, 한국-캐나다 FTA, 힌국-EU FTA 때도 규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농민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비록 한국이 체결한 FTA에서 쌀이 100% 개방 대상으로 빠져있긴 했지만, 쌀을 대체할 수 있는 밀 등의 곡물과, 과일 등 상품 작물은 FTA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별다른 대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국회로 달려들 정도로, 그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여야정 협의체는 30일 한중 FTA로 인한 피해 농어민 지원을 위해 총 1조 원의 상생기금을 조성하기로 협의하고, 피해보전직불제 보전비율을 내년부터 95%로 인상하기로 했다. 농어업 정책자금 고정대출 금리는 인하할 예정이다. 기금은 민간기업, 공기업, 농수협 등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재원으로 매년 1천억 원씩 10년간 조성하게 되며, 자발적 기금 조성이 연간 목표에 못 미치는 경우 정부가 부족분 충당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FTA가 남긴 영향을 살펴봤을 때, 1조 원의 기금은 턱없이 모자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1년에 평가한 한-미 FTA로 인한 농업부문 생산액 감소는 15년 차에 1조 2,354억 원, 15년 간 12조 2,252억 원 원이었으며, 연평균으로 8,150억 원이나 된다. 전채 피해액 중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7%로 (8,193억 원)으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피해가 큰 품목은 과수로 전체의 24% (3,012억 원), 채소 및 특작 작물은 7%(853억 원), 곡물은 2%(295억 원)이었다.

이미 정부는 한미 FTA 보완대책으로 농업부문에 21조 4천 억 원 규모의 융자 지원을 하고 있다. 2007년 협상 타결 당시 정부가 발표한 농업부문 보완대책에 제시된 투융자 규모는 10년 간 20조 4천 억 원이었으며, 2011년에 변화된 경제여건을 반영해 피해규모를 다시 추정해 1조 원을 추가적으로 배정했다. 또한 2004년부터 10년 간 시장개방에 대응한 농업, 농촌 발전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배정한 119조 원의 투융자 계획을 추가로 시행하고 있다.

이 정도 지원금이면 피해 보상을 하는데 충분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보완대책의 방향이 단순한 피해 보상이 아닌, 국내 농업의 경쟁력 제고에 있기 때문이다. 소득보전과 폐업 보조 등 단기적 피해 보전 대책이 총 지원금의 1조 2천 억 원(6%)으로 매우 낮은 것은 이 때문이며, 한미 FTA 대책 가운데 인삼, 채소 등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가능성이 낮은 품목에 우선 지원하고, 친환경 농업엔 직접 지불해 수출을 촉진하는 등 수혜를 주는 것도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작물은 자연 도태되도록 한다. FTA의 흐름에 기대 농업 구조조정까지 추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농민의 삶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피해보전 직불 제도 발동기준 가격은 평균 가격의 85% (축산 및 과수는 45% 이내)로 가격이 15% 이상 하락할 경우에만 보상이 이뤄진다. 발동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결국 농민들은 상당한 소득 감소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보상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14일 광화문을 점령했던 민중총궐기 시위엔 한중 FTA와 TPP를 반대하는 다수의 농민도 섞여있었다. 비록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아무런 해결책을 낳지도, 국민적 함의를 부르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왜 물대포에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 청와대에 돌격하려 했는지, 왜 삶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는지에 대해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디 여야정이 구상한 1조 원의 기금이 그들의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