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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예산, 우려 넘어 현실로...자구책 마련하는 경기 ∙ 충북 지자체

지난해 12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강득구 도의회 의장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각각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교육감과 강 의장은 누리과정 예산의 전액 중앙정부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강득구 도의회 의장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각각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교육감과 강 의장은 누리과정 예산의 전액 중앙정부 지원을 요구했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 직접적 위협으로 다가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 교육감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서울 등 일부 지역 유치원들이 학부모들에게 사실상의 '원비 인상' 고지에 나서기로 했다. 누리과정 지원금이 끊기면 최종적으로는 학부모에게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것이어서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명희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장은 20일 "학부모들에게 누리과정 지원금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비용을 낼 준비를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면서 "학부모들 반발이 심한 상황"이라고 전하며, "지원금이 끊길 것에 대비해 교육청에 은행 차입 허가까지 요구했으나 그것도 안되면 교사 임금 체불, 급식 차질 등이 우려된다. 일단 이번주까지는 기다리면서 다른 방도를 찾아보겠지만 정 안 되면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사립유치원연합회는 누리과정 지원금 중단에 따른 운영비 충당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일시적인 은행 차입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이며, 이날 낮 12시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누리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집회도 열 예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21일 다시 만나기로 해 극적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18일 이 부총리와 교육감협의회 임원진들과 만남에서도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별다른 합의를 하지 못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21일 오후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전국 교육감들과 만나 누리과정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 부총리는 21일 총회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지역의 학부모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감들에게 다시 한 번 예산 편성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앞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만나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청에 보내는 전출금을 빨리 지급할 것을 요청했으며 전날 당정청 협의회에서도 이같은 내용이 다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또 서울과 광주, 전남 등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지방의회에서 거부된 지역에는 내부유보금을 활용하고 경기는 준예산으로 우선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요청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다만 교육감들이 지난 18일 간담회에서 요구했던 국회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청은 총선 등으로 국회 일정이 여의치 않은 만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재정 경기도지사
이재정 경기도지사

경기도지사 "대통령과 정부가 절대적 여론 외면했다."

이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20일 "지방교육재정 악화로 초·중·고 학교교육이 위기상황"이라며 "이미 '교육대란'이 와서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문제로 보육대란에 직면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지방교육자치법상 교육학예를 관장하는 교육감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인 초·중·고 학교교육의 붕괴가 심각하게 걱정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보통교부금 증가(2012년 7조1천476억원, 2014년 8조2천635억원, 2016년 8조4천232억원)는 인건비와 누리과정비 합산액(2012년 7조2천809억원, 2014년 8조5천72억원, 2016년 9조6천402억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2년과 2014년을 비교하면 교육복지 지출 중 누리과정 비중도 69%에서 71%로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교수학습활동 지원비는 6천730억원에서 4천665억원으로 30.7%, 평생교육비는 142억원에서 111억원으로 21.9%, 학교교육여건 개선 시설비는 9천913억원에서 9천262억원으로 6.6%가 각각 줄었다. 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 예산도 2012년 95억원에서 2014년 83억원, 2015년 66억원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총부채(BTL 원리금·운영비 포함)는 7조8천984억원으로 급증해 올해 상환액만 4천850억원에 이르게 됐다고 도교육청은 설명했다.

 이 교육감은 누리과정에 대해 "국민 절대다수가 중앙정부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정부, 여당은 국민의 절대적인 여론을 철저히 외면한 채 국민을 호도하고 오히려 겁박으로 일관하면서 근본적인 대책보다 미봉책으로 위기를 잠시 뒤로 미루려고 한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누리과정 해법에 대해 "교육부와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대통령에게 왜곡된 보고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사실대로 정확히 보고를 받고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어린이집 누리과정비 준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남경필 지사의 편법 지원 발표는 미봉책으로, 누리과정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교육재정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어린이집 누리과정비 전액의 국고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해 말 도의회에 제출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해서는 "법률적으로 도의회(상임위와 예결위)가 삭감한 예산을 살려 집행할 수 없다"고 못박았으며, 아울러 지방교육자치권을 거론하며 초등 돌봄을 비롯한 각종 국가 위임 사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 교육감은 "헌법 제31조와 지방자치법 제122조, 지방교육자치법 제20조에 근거해 국가사무와 자치사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며 "1991년 지방교육자지체 도입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의 국가·자치사무 구분에 관해 법률 검토를 포함한 조사 및 정책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천시어린이집연합회는 20일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집행을 촉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약 200명의 원장들은 "정부와 시교육청 간 정치적 힘겨루기의 여파로 올해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은 한 푼도 집행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이 안정적인 보육을 받을 권리도 잃게 됐다"라며, 이어 "국고든, 교육재정교부금이든 모든 세금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어린이집 재원 3∼5세 유아에 대한 누리과정 예산은 반드시 편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교육청은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지만 시의회가 교육감 동의 없이 6개월분 예산 561억원을 세우자 의회에 재의를 요구한 상태이며, 이에 인천시는 1월분 누리과정 운영비 100억원을 20일까지 시에 전출하지 않으면 보육료와 보육교사 수당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시의회가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교육청의 재의 요구안을 22일 처리할 예정이라며, 재의 요구 채택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진 예산을 시에 전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충북도지사, "카드사가 대납하는 기간동안, 운영비 33억원 도가 선집행."

충북 일선 시·군들이 요즘 충북도를 잔뜩 응시하고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교부일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예년대로라면 원생 1인당 29만원을 충북도로부터 내려받아 25일 보육료 22만원은 사회보장정보원에 보내고 담임보육교사 수당 등 운영비 7만원은 어린이집에 입금 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기존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6개월치 411억9천만원이 충북도교육청에 편성됐만, 이 예산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집행이 묶였기 때문이다.

애초 올해 예산안에 어린이집 예산은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던 도교육청은 도의회가 6개월치를 임의 편성하자 법령 위반을 이유로 지난 8일 재의를 요구하며 관련 예산 집행 보이콧을 선언했다. 교육청은 실제 1월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68억8천837만원을 20일까지 전출하라는 도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지켜봐오던 어린이집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보육료 22만원은 아이행복카드사의 선납으로 문제가 없지만, 운영비 펑크는  현실로 다가왔다. 어린이집들은 갈등 당사자인 정부나 교육청을 비난하면서 해당 시·군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라고 있고, 도비 사업이어서 뾰족한 방법이 없는 기초자치단체들은 도의 대책 하달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청주시만 해도 오는 25일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300개 어린이집(1만4천100명)에 모두 9억9천687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해야 하는데 예산 집행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애만 태우고 있다.

시 관계자는 "어린이집들이 운영비가 안 들어오는 상황을 고민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답답하다"며 "도비 사업이어서 현실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어 도만 바라보는 처지"라고 전했다. 예비비 집행이 가능한지를 검토 중인 기초 자치단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육대란 위기에 놓인 어린이집들의 사정을 모를리 없는 충북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충북과 비슷한 실정의 타 시·도 동향을 체크하고, 시·군 부단체장 영상 회의를 하는 등 대책을 궁리하고 있지만 딱히 묘안이 없는 상황이다. 도는 아직 5일의 시간이 남은 만큼 22일까지 1월분 어린이집 누리과정 자금을 입금해 달라는 내용의 촉구 공문을 도교육청에 재차 보낼 계획이다.

그러나 누리과정 문제가 나중에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든 의회가 예산을 임의 증액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병우 교육감의 확고한 태도여서 도교육청은 적어도 재의 요구안이 처리될 때까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집행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현재 충북도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4.3개월치 297억원이 편성돼 있다. 이 또한 도의회가 임의로 증액 편성한 것이다. 이시종 축북도지사는 지난해 12월 21일 본회의장에서 "도교육청으로부터 자금이 교부될 경우 집행하겠다"는 조건을 달아 증액 편성에 동의했다. 이 지사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 자금 일부를 우선적으로 시·군에 내려보낼지가 주목된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20일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에 필요한 운영비 1∼2개월치를 충북도가 선집행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날 역시 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해 "1∼2개월분 보육료는 카드사가 대납 조치하는 만큼 같은 기간 필요한 운영비 33억원은 도가 선집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또한 "법대로 하면 교육청에서 전출받은 자금을 도가 어린이집에 집행하는 게 정상절차이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는 점에서 도가 선집행하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