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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산으로 눈 돌리는 中企…"수출 감소 불가피"

국내 중소 특수 윤활유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몇 년간 미국 고객사로부터 현지에 생산라인을 확보해 제품을 공급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국 항만 노조의 파업 등이 잇달아 발생해 A사가 한국에서 생산한 윤활유를 공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고객사는 "항만 파업 등의 이유로 한국 생산 제품을 받지 못할 수 있으니 안전하게 미국에서 생산라인을 설립해 제품을 공급하라"고 했다.

고객사를 잃을 수 없다는 판단에 A사 대표는 최근 수십억 원 규모의 현지 생산 업체 공장을 인수해 윤활유 제조공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A사가 현지 생산라인을 두고 미국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하면, 자연스럽게 A사의 '수출 물량'은 이탈해 전체 수출 규모는 줄어든다.

A사 대표는 "고객사 관계자는 한국산이 아무리 싸고 품질이 좋아도 공급 차질 우려 등의 이유로 미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어느 정도 수출 규모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26일 중소기업계와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해외에 제품 생산라인을 두는 중소·중견 기업이 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중견 기업의 올해 상반기 수출액은 905억5천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감소했다. 중소기업의 수출액은 467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줄었으며 중견 기업 수출은 438억 달러로 6.8% 감소했다.

우리나라 수출은 중소·중견 기업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중소기업 등의 수출 감소가 장기화하면 우리나라 수출 산업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소·중견 기업 수출 비중은 올 상반기 전체 수출의 37.4% 수준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주요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은 자국 산업을 위한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해 우리 기업의 현지 수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 기업이 A사처럼 고객사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해외 생산을 고민하는데도,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수 기업의 수출 기업화를 위해 관계 부처와 업계 간 간담회를 마련하고 중기청은 최근 수출 지원을 위한 12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공개했지만, 정작 해외 생산 등 기존 수출기업의 수출 감소 요소들에 대해선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해외 생산 전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그간 집중적으로 검토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앞으로 대책 마련에 힘을 써 수출 물량 이탈을 막겠다"고 말했다.

의류업체 관계자는 "메이드 인 코리아(국산) 제품이 해외 고객들에게 품질을 인정받아 국내 생산을 고수하고 있다"면서도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라인이 워낙 영세해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 해외 생산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생산라인 확충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