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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특약 중단 손보사들, 비난 여론 들끓자 판매 재개···"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

지난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관련 보험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던 손해보험사들이 여론의 비판이 들끓자 이를 철회했다.

22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진 관련 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들은 이날 협의를 거쳐 중단했던 지진보험 상품의 판매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상품을 정해놓지는 않되, 어떤 형태로든 고객이 원한다면 지진을 담보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동부화재, 한화손보, 농협손보 등의 손해보험사들은 판매하고 있는 보험상품의 지진특약 중 일부에 대해 한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손보사들은 "경주 지진 이후 역선택의 우려가 있어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약관상 여진의 경우에는 원래 지진과 같은 사고로 보기 때문에 지금 가입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데,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가입하는 이들이 생기면 이를 두고 분쟁이 생길 수 있어 한시적으로 가입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상품을 판매해 놓고 막상 손해가 생길 것 같으니 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예상치 못한 지진으로 막대한 손해를 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화재보험의 지진특약 가입률이 0.14%에 그치기 때문에 타격이 크지 않다"며 "상품을 팔다가 손해를 볼 것 같으니 이를 그만두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보험사들이 손해율 높은 상품의 변경을 앞두고 '절판 마케팅'에 나서곤 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이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며 "일단 판매하던 상품은 계속 판매하면서 새로운 위험률을 산정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도 "보험상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하고 판매하는 것인데,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단한다면 그렇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셈"이라며 "이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원칙적으로는 보험사가 판매를 중단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위험이 발생해 수요가 있는데 거절하는 것에 비난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지진특약 등은 법적으로 의무보험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을 인수하도록 강제할 근거는 없다"며 "회사들이 각자 위험인수 기준을 가지고 심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지진의 위험성이라는 것이 경주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거의 인식되지 않다시피 하다 보니 보험사들의 입장에서도 요율 산정 등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적절한 보험료를 산출하려면 경험통계에 따라 사고 발생률을 알 수 있어야 하지만, 수십 년간 경험해보지 않은 지진에 대해서는 이를 산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손보사들이 산정해 둔 지진담보 영업요율은 0.003% 내외로 알려졌다.

1억원의 보험에 가입했을 때 보험료는 3천원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보험연구원 최창희 연구위원은 "만약 지금 지진이 발생해 수천억원짜리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난다면 도산하는 보험사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위험성이 큰데, 이를 보험사가 모두 떠안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며 "국내에서 과거 대지진은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요율에 참고할 만한 통계도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인식된 지진의 위험이 민영보험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므로, 결국 정책성 보험상품의 도입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실제로 일본, 미국 등 지진 발생이 빈번한 국가에서는 거대한 위험의 특성을 고려해 국가재보험제도를 운영하거나 나라에서 직접 재보험사업을 운영해 관련 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지진담보 전용 정책성보험을 출시하거나, 의무보험인 풍수해보험에서 일반 건물과 공장 등까지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