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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회장 구속 여부 놓고 롯데그룹 긴장감···"경영 공백 우려·M&A 등 제동으로 성장 동력 잃을 것"

롯데그룹의 경영비리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검찰이 조만간 신동빈 롯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롯데그룹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만약 구속될 경우 신 회장은 지난해 7월 형제간 분쟁을 거쳐 장악한 한·일 롯데 통합 경영권을 잃게 되고, 일본인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일본 롯데에 계열사 대표 중심의 한국 롯데가 종속될 가능성마저 있다는 게 롯데 안팎의 우려다.

신 회장이 강력히 추진하던 호텔상장 등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대형 인수·합병(M&A) 같은 롯데그룹의 미래 생존을 위한 동력도 상당 부분 상실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신 회장 구속시 롯데그룹 경영 공백 우려···日 롯데 오너 일가 통제 벗어날 수도

롯데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신 회장의 구속으로 한·일 롯데의 '원톱(one top)', 구심점, 연결고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롯데 신씨 오너 일가에서 총수로서 신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 사람도 현재 마땅치 않다.

95세 고령의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우 지난달 말 한국 가정법원으로부터 후견인(법정대리인)이 지정될 만큼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고,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8일 일본 홀딩스 주총을 통해 이사직에서 한 차례 해임된 바 있기 때문에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

더구나 신 전 부회장 역시 별다른 경영활동 없이 10년간 400억원 이상 한국 롯데 계열사로부터 급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만큼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본 롯데는 곧바로 신동빈 회장을 경영진에서 배제하고 일본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영 관례상 비리로 구속된 임원은 즉시 해임 절차를 밟기 때문에, 조만간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는 이사회와 주총을 열어 신 회장을 홀딩스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현재 신 회장과 홀딩스 공동 대표를 맡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가 가장 유력하다.

일본 홀딩스 임원과 주주들이 신 회장의 대표직을 바로 뺏지 않고 향후 한국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기다려준다 해도, 당분간 일본인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 경영 체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 씨 일가 가족회사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와 신 씨 일가 개인 지분(약 10%)을 제외한 홀딩스 주식의 과반이 일본인 종업원·임원·관계사 소유인 상황에서 홀딩스 최고 경영진마저 일본인으로 바뀔 경우, 사실상 일본 롯데는 신 씨 롯데 오너 일가의 통제·관할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한국 롯데의 경영 공백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룹 2인자였던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이달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을 후진 그룹인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모두 비자금 수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 사건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는 처지다.

이에 따라 한국 롯데는 당분간 각 계열사 대표 중심의 경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안으로 '집단 경영체제'가 고려될 수도 있다. 이재현 CJ 회장이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실형을 받고 병원에 머무는 동안 CJ가 손경식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등이 참가하는 그룹 경영위원회 등을 설치해 경영 공백을 메웠던 것과 비슷한 형태다.

하지만 현재 롯데에는 이인원 부회장 유고 이후 부회장급조차 남아있지 않은 데다, 본사(정책본부)와 계열사 주요 대표들도 모두 비자금 비리 등으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집단 경영체제를 꾸리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국내외 M&A, 롯데 개혁 등 성장 동력 멈출까 우려

신동빈 회장이 주도해온 인수·합병(M&A), 상장 등을 통한 그룹 성장 전략도 전면 중단될 전망이다.

신 회장은 최근 10여년동안 '승부사' 스타일의 경영 감각으로 긴 불황 속에서도 잇따라 대형 M&A를 성사시켜 롯데 그룹을 급성장시켜왔다. 그 결과 최근 롯데는 자산 규모 기준으로 LG와의 격차를 크게 좁히며 재계 4위 자리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롯데 내부의 'M&A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 회장이 롯데정책본부장으로 취임한 2004년 이후 2015년 5월까지 성공한 주요 M&A는 모두 35건에 이른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 와중에도 10월 삼성그룹의 화학 부문을 3조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성사시켰고, 앞서 같은 해 KT렌탈·뉴욕팰리스호텔 등 1조원 안팎의 M&A '대어'도 낚았다.

하지만 지난 6월 롯데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시작된 이후, 롯데의 M&A 행진은 완전히 멈춰섰다.

"글로벌 12위 종합화학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로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 인수를 추진하던 롯데케미칼은 6월 10일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지 사흘만에 '철회'를 선언했다.

호텔롯데도 해외 면세점 인수 협상을 벌이다가 사정 당국의 수사와 그에 따른 호텔롯데 상장 불발 이후 실무 작업을 접었다. 면세점뿐 아니라 호텔롯데는 각각 프랑스와 미국 유명 호텔 M&A를 추진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지만, 이 역시 포기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쇼핑몰 스나얀시티 인수도 무산 위기다. 롯데는 국민연금과 함께 3천억원을 들여 스나얀시티 지분 70%를 확보할 예정이었으나 검찰 수사 이후 협상이 중단됐다.

롯데가 2009년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베트남 호찌민 대규모 복합단지 건설도 위기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해야 하지만 검찰 수사 이후 투자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투자 결정이 계속 미뤄지면 사업자를 바꾸겠다고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이 수감돼 경영상 주요 결정이 미뤄지면, 이런 '경영 위축'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적절한 시점과 과감한 결단이 승부를 가르는 M&A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 6월말 목표로 추진됐다가 검찰 수사와 함께 연기된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신 회장 구속시 사실상 '무산'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호텔롯데 상장을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 개혁'의 제1 과제로 선정하고 밀어붙였던 신 회장이 구속과 사법처리로 자리를 비울 경우, 한국 호텔롯데 지분 99%를 소유한 일본 홀딩스를 포함한 일본계 주주들이 자신들의 지분율과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장'을 재추진할 리 만무하기때문이다.

이 경우 롯데는 수조원의 상장 공모 자금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일본 기업' 꼬리표도 뗄 수 없게 된다.

이 밖에 신 회장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추진해온 나머지 개혁 작업도 표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는 작년 9월 그룹 내·외부 위원과 실무진 20여명으로 구성된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출범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사랑받는 기업'을 목표로 ▲ 계열사 자율경영 확대 ▲ 협력사와의 수평적 관계 강화 ▲ 청년 일자리 창출 강화 ▲ 능력중심 열린 채용 확대 ▲ 롯데 엑셀러레이터(청년 창업 지원 전문회사) ▲ 여성 리더 육성 등을 추진해왔다.

위원장이었던 고 이인원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동안 계열사 유연근무제 시행, 직장 어린이집 두배 확대, 감정 노동자 매뉴얼 작성, 장애우 채용 확대, 수 십개 벤처 창업 지원 등 성과를 거뒀으나, 신 회장과 고 이 부회장이 모두 자리를 비우면 개혁이 탄력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 등으로 위축된 임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기업문화개선위는 여전히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고 이인원 부회장의 공석으로 5월 이후 전체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신 회장까지 구속되면 '황제경영'으로 지적받던 구습을 벗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개혁 기회마저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