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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역사교과서 시행여부 2018년 이후로 유예해야 한다

이준식 교육부장관은 국정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집필진을 공개하면서 “다음달 23일까지 국민의견을 듣고 현장에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정교과서 시행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교육부의 현장검토본 공개와 청와대의 내년 시행방침이 알려지자 국회와 일부 시민단체들 및 역사학자들은 강력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몇 가지 논란거리가 있지만 그 이유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일’이라고 표기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대사중 박정희 정부의 경제적 치적으로 지나치게 많이 서술하는 반면 독재부분은 간단히 기록하여 치적평가의 형평성을 상실하고 독재를 미화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야당의 교문위원들은 4.3향쟁에 대한 왜곡, 재벌미화, 일제의 위안부 학살 은폐.축소,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 사실관계 왜곡, 노태우정권의 민주정부 반열 승격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내년 3월 시행방침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선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은 국정역사교과서의 폐지를 위하여 당내 특별위원회나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기로 하였고, 민주당은 국정교과서 저지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유은혜의원을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당초계획의 변경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국정교과서의 내년 시행방침은 당초 2017년 3월 시행키로 계획하였으나 박근혜정부의 임기에 맞추어 내년 시행으로 앞당긴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대통령은 국민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와 국회가 추진하는 탄핵절차에 몰려 내일의 운명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새누리당 자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징계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이 ‘박근혜교과서’라고 비판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를 내년에 그대로 시행할 수 있겠는가?

역사교육은 섣불리 바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교과서 기술과 편찬이 문제가 있었다면 민주적 절차와 유능한 전문가의 참여를 통하여 역사적 진실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이 과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막상 검토본이 나오고 보니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기술되고 왜곡되었다는 부분이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 부분의 경우 이를 전공하는 전문가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공공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토론과 협의를 거쳐 일정한 합의가 이우러지거나 정책주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의 주도자는 이미 추진동력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정국의 혼란이 워낙 복잡하여 민주적 협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역사교육의 중요성과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국정역사교육시행은 제도의 타당성과 교과서의 내용에 대하여 내년 1년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한 뒤 2018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