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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겨울에 붙어 있는 나뭇잎 하나

아침저녁으로 매서운 바람이 볼을 차갑게 훑고 지나간다. 노란 잎이 예쁘게 달려 있던 은행나무는 발가벗고 온몸으로 부는 바람을 맞고 있다. 12월 중순으로 본격적인 한겨울로 접어드니 이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넓적한 잎이 무성하게 다려 있던 프라타나스에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있는 잎들이 한 두 개 보인다. 바짝 말라서 몸가짐도 이리저리 비틀어지고 구겨져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여름 한철 무성하던 나뭇잎도 다른 잎들이 떨어지면 같이 낙하하여 땅으로 가라앉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무리 용을 써본들 한두 번만 매서운 바람이 다시 휘몰아치면 여지없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말 것인데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잠깐 더 나무 기둥에 매달려 있어 본들 무었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봄에 새싻이 터면 생명의 신비에 우리는 찬탄을 금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에 무성한 잎과 가을에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을 때 우리는 나무의 에너지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와 나뭇잎들이 일제히 마른 낙엽이 되어 우수수 지상으로 떨어지면 애잔한 아쉬움과 더불어 삶의 지혜를 거기서 터득하기도 한다. 떨어질 때 떨어지는 낙엽만이 그런 안타까움과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대상이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 어린이로 어른들의 귀여움을 받고, 어른으로 성장하여 열심히 일하게 되면 어떤 형태든 과실을 맺게 된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나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 사회경제적 성과에 대하여 칭송과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귀공명의 자리는 영원한 것은 아니다. 서서히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바람에 부는 낙엽처럼 땅으로 급전직하의 자세로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아니하다. 같이 권력을 향유하고 부귀의 맛을 보던 사람들이 유폐의 몸이 되어 차가운 밤을 회한으로 보내는 데 나 혼자서 정치적 권력의 고리를 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면 이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어떠할까? 마지막까지 부질없는 집착에 매달려 신음하는 인내와 오기에 찬탄을 보내겠는가, 아니면 이기적 탐욕에 함몰되어 어리석게 허우적거리는 몸짓에 혀를 끌끌 차고 말 것인가?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