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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은 탄약 버리고, 장성은 성추행 하고…군기 문란 심각

병사·장교·장군까지 비위 가담…年 사망자 100명, 대민범죄 3천건
울산 군부대 폭발 사고도 기강해이 때문……"일벌백계로 신뢰 높여야"
부하에 대한 가혹행위는 기본이고, 음주운전에 성범죄, 사기 가담까지…

부대 안팎에서 벌어지는 군의 기강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

울산 군부대에서 지휘관의 지시와 묵인 아래 장병들이 몰래 훈련장에 버린 화약이 폭발해 20여 명이 다친 사고도 추락할 대로 추락한 기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법규와 절차를 중시해야 할 군에서 동원된 각종 편법과 졸속이 한계치를 넘어 결국 대규모 인명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보안'이라는 울타리 뒤에 숨어 특유의 폐쇄적인 시스템과 문화가 만연한 군에서는 일반이 모른 채 넘어가는 사고와 비위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부대를 벗어난 군인들의 일탈, 솔선수범해야 할 장성과 장교들의 비위, 여전한 가혹행위와 성추행 등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군으로서 갖춰야 할 기강부터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화약 5㎏을 바닥에 버려…"어처구니없지만, 이것이 현실"

울산 예비군훈련부대 폭발사고는 지휘관인 대대장과 탄약관리관인 부사관의 안이한 폭발물 관리, 참모와 소대장 등 다른 간부의 방조와 묵인 등이 초래한 '인재(人災)'다.

53사단 헌병대가 밝힌 사고 경위는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막힐 정도다.

이 부대는 올해 수령한 훈련용 폭음통 1천842개 중 1천600여 개를 사용하지 못해 남겼다.

탄약관인 중사는 이를 소모해야 한다고 보고했고, 대대장은 "불이 나지 않도록 비 오는 날 처리하라"고 했다. 화재 위험이 없도록 적절히 터트려서 없애라는 불법적인 지시였다.

탄약관은 그러나 더 부적절한 방법을 택했다.

1개를 터뜨려도 소음이나 충격이 만만찮은 폭음통을 1천600여 개나 불을 붙여 터트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소대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폭음통에서 화약만 추출해 버리고, 껍데기는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이달 1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시가지 전투 훈련장에서 이 작업이 이뤄졌다.

이렇게 바닥에 버려진 화약은 약 5㎏에 달했고, 결국 13일 현장을 지나던 병사들이 들고 있던 삽이나 갈퀴에서 발생한 정전기로 점화돼 폭발했다.

사고 경위를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하면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고가 난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의 어머니는 "9월에도 미사용 훈련용 수류탄을 터트려 소진하는 과정에서 한 사병이 손에 화상을 입어 입원하는 사고가 있었다"면서 "이번 폭발이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만연한 불법과 졸속이 결국 대형사고로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 허벅지에 오줌, 속옷 벗기기…도 넘은 가혹행위·성추행

군에서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군사법원에서 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군대 내 사건·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476명이었다. 군 내 사망사고는 영내 활동과 휴가·외출·외박, 퇴근 후 영외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포함한다.

사망자 중 자살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군 업무나 활동이 위험을 수반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매년 100명 안팎의 인원이 숨진다는 점을 쉽게 수용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 역시 군의 기강 해이 문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혹행위나 성추행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기강 확립을 기대할 수 없다.

연합뉴스가 7월 국방부 군사법원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괴롭힘의 방법이나 가혹행위에 사용된 도구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육군 모 부대 GP 부소초장인 한 부사관은 지난해 90V가량의 전기를 발생시키는 무전기로 병사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 부사관은 수기 막대, 공병삽, 장도리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밖에 목욕탕에서 후임병 허벅지에 소변을 본 병사, 철제 너트를 손가락에 끼워 후임병 이마를 때린 육군 부사관, 후임병을 대검으로 위협한 병사 등이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후임병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겨 던진 병사, 부하 여군에게 "여자는 어쩔 수 없어. 너희 엄마를 봐도 그렇잖아" 등의 성차별 발언을 한 장교 등 군 내 성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울타리 벗어나 수위 넘은 일탈…민간인이 피해

휴가를 나왔거나 퇴근한 장병들이 범죄를 저질러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15일 오전 6시 30분께 광주 북구 운암고가 밑 도로에서 육군 상근병 조모(21) 상병이 음주운전을 하다 쓰레기 수거원(56)씨를 치어 숨지게 했다.

조 상병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6%였다. 그는 이날 오전 근무지인 부대로 출근했어야 했다.

국군의 날인 10월 1일 오전 5시 25분께 청주시 청원구 우암산 순환로에서 육군 한모(20) 일병이 1t 트럭 화물칸에 후배 고교생 8명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 도로표지판과 가로수 등을 들이받았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화물칸에 타고 있던 1명이 튕겨 나가 숨졌다. 한 일병과 나머지 고교생 7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친구들과 사기 사건을 저지른 현역 군인도 있다.

서울 방배경찰서가 올해 7월 검거한 교통사고 보험사기단 중에는 현역 김모(21) 일병이 포함돼 있었다. 김 일병은 승객을 가장해 택시에 탑승한 뒤 역주행 등 법규 위반을 유도, 친구들이 고의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내도록 하는 수법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6월 5일 새벽에는 부산 해운대의 한 오피스텔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의 여자친구를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로 20대 장교가 경찰에 붙잡혀 헌병대에 인계됐다.

이 밖에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나 가출 여중생과 성관계를 한 부사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을 성추행하고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장교 등 군인의 민간인 대상 범죄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군사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천 건 안팎의 대민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 성매매 알선한 소령, 성희롱한 장성…"일벌백계해야"

장성급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도 비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10월 기무사 소속 A소령은 인터넷 채팅으로 성매수남에게 성매매 여성을 소개해주고, 오피스텔과 모텔 등 장소도 알선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돼 헌병대로 넘겨졌다.

현장을 덮친 경찰이 여성으로부터 "알선해준 사람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추적, 뜻밖에도 현직 영관급 장교를 붙잡은 것이다.

국방부 모 직할부대 부대장인 B준장은 올해 상반기 부하 여직원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자진 전역했다.

앞서 한 재외공관에 국방무관으로 파견된 C준장도 공관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는 신고로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동기생의 전역 절차를 단축하고자 전역지원서 양식을 임의로 바꾼 육군 D소장이 처벌을 받았다.

사관학교 동기생이 부하장교의 부인과 1년 이상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급하게 전역을 신청하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 있던 D소장은 동기생의 비위 확인 절차가 생략되도록 '소속 부대장 확인란'을 없애는 방식으로 전역지원서 양식을 변조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16일 "일각에서 국내 군대 규모를 고려하면 사건·사고가 잦지 않은 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대한민국처럼 징병제로 국민이 안보에 이바지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이 군에 더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을 요구한다"면서 "과거의 군대처럼 잘못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방조·묵인하는 행태를 버리고, 불법이나 범죄를 저지른 군인은 강력히 처벌해 군의 신뢰를 스스로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