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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절반 임금피크제 도입…정년 보장은 '갈 길 멀어'

임금피크제 도입률 27.2%→46.8%…정년도 60.3세로 높아져
국민은행 등 '조기 명퇴' 바람에 임금피크제 취지 '무색'

대기업의 절반 가까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희망퇴직 등으로 조기 퇴직을 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을 보장하되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6.8%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27.2%에 비해 20%포인트가량 높아진 것이다.

올해 300인 이상 사업장의 60세 정년 의무화에 따라 상당수 사업장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전체 근로자 대비 올해 1∼9월 퇴직자 비율이 23.1%로, 임금피크제 미도입 사업장(48.4%)보다 훨씬 낮았다.

또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은 퇴직자 수보다 신규 채용자 수가 많았지만, 미도입 사업장은 신규 채용자보다 퇴직자가 많았다.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 증가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근로자에게 임금 감액분 일부를 지원하는 정부지원금도 지난해보다 2.1배 증가했다.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장의 평균 정년은 60.3세로 지난해보다 0.5세 높아져, 조사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평균 정년이 60세를 넘어섰다.

고용부 박성희 고령사회인력정책관은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연령이 아닌 직무와 역량에 따라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말 그대로 통계로 그칠 뿐,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은 이보다 훨씬 낮다는 지적이 많다.

수많은 대기업이 조기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현실에서 60세 정년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KB국민은행은 이달 들어 근속 10년 차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대리급 이상이 해당한다. 지난해 만 45세 이상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보다 대상 연령이 더 낮아진 것이다.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1천100명이 나갔는데, 올해 대상 연령이 더 낮아진 만큼 퇴직자는 더 많을 전망이다. 국민은행도 임금피크제를 하고 있지만, 정년 보장이라는 취지는 실종됐다고 할 수 있다.

희망퇴직 바람은 국민은행뿐 아니라 전 대기업에 불어닥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이 올해 들어 감축한 직원 수는 무려 1만 4천여 명에 달한다.

삼성그룹은 올해 삼성중공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 5개 계열사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이 잇따르는 건설업계와 조선업계의 희망퇴직 바람도 거세다.

지난해보다 순이익이 대폭 늘어난 은행권도 희망퇴직에 앞장서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이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권에서는 AIA생명, 농협생명, 미래에셋생명,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등 희망퇴직 추진 기업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회사원 김모(45) 씨는 "정년 60세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주위에서 50대 중반까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에서 임금피크제 도입만 추진하지 말고, 실질적인 정년 보장에 힘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 연합뉴스 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