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에 휘청인 공연계…"진짜 위기는 올해부터"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17.01.08 16:39:13

한화클래식 2016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의 내한공연 모습▲지난 3월 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의 내한공연. (사진 : 한화그룹 제공)

'영란 티켓' 등 고육지책 잇달아…"공연문화 체질개선 계기 삼아야"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 100일을 넘긴 가운데 공연계는 "진짜 위기는 올해부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기업들이 이미 대형 공연에 대한 협찬금 책정을 마무리한 상황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분야로의 지원을 감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기업 후원 의존도가 높았던 클래식 업계는 티켓값을 2만5천 원까지 낮춘 '영란 티켓'을 내놓는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 '공연계 보릿고개' 우려…"기업들, 협찬에 몸 사려"

8일 공연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해 열릴 예정인 대형 공연들에 대한 협찬 결정을 눈에 띄게 미루고 있다.

그런 탓에 1년 치 라인업을 미리 짜놓는 공연업계 특성상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작년보다 올해 본격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은 기업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 업계다.

은행·카드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은 그간 클래식 공연 협찬 비용의 30~50%를 티켓으로 환산받아 고객 초청이나 거래처 접대에 사용해왔다.

그러나 초대권을 받는 이들 중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상당수 포함될 수 있어 티켓 제공이 자칫 법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기업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는 것이다.

한 클래식 기획사의 관계자는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이틀 일정의 공연을 제작하는 데 10억 원 언저리의 돈이 든다"며 "회당 5억 원의 제작비를 티켓 유료 판매로만 맞추려면 2천500석 전부를 20만 원에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국내 클래식 인구를 고려할 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클래식 공연은 기업의 후원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일반 관람객들도 적정선의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지켜보자'며 후원을 주저해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국공립 교향악단 관계자도 "수년간 파트너십을 맺어온 협찬사에서도 올해는 지원에 대해 예년보다 까다롭게 검토하는 분위기"라며 "그간 협찬 제안서에는 주로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넣었지만 올해는 청탁금지법에 대한 대책 등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지원 위축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작년 11월 메세나(기업이 문화예술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 활동을 하는 기업 8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기업과 예술계 간의 협력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답한 곳은 70.8%였다.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막연한 심리적 위축(52.9%), 관계자 초청 등 공연티켓 활용도 저하에 따른 메세나 활동의 실제적 필요성 감소(37.3%), 접대비 및 홍보비 등 관련 예산 삭감(9.8%) 등을 꼽았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중공연 및 뮤지컬업계도 덩달아 눈치를 보고 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공연업계는 연말에 특수를 누리는데 작년 말 청탁금지법 이슈로 재미를 덜 봤다"며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티켓이 대부분일 텐데도 일단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짙었다"고 말했다.

다른 대중공연 업계 관계자는 "대중가요나 팝 공연은 팬덤 문화가 잘 형성돼 있어서 클래식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 같다"며 "아직은 큰 영향을 느끼지 못하지만 추이를 관찰하고 있다"고 전했다.

◇ '영란 티켓'까지 등장…"초대권 남발 문화 개선" 기대도

클래식 공연계는 티켓 가격을 낮추고 유료 관객 수를 늘리며 위기 타개에 나섰다.

작년 말 한 대형 클래식 기획사는 티켓 가격을 2만5천 원에 맞춘 이른바 '영란 티켓'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 공연의 2층과 3층석 전체를 C석으로 조정하고 해당 좌석의 티켓 가격을 7만 원에서 2만5천 원으로 낮춘 것이다.

2만5천 원이면 티켓 2매를 선물해도 법이 정한 허용가격(5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 기획사는 올해부터 공연 좌석 등급을 기존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조정하는 결정도 내렸다.

해당 기획사 관계자는 "기존 'R-S-A-B-C' 순의 좌석 등급 정책을 'R-S-A-B'로 변경했다"며 "S석에는 과거 A석에 가까운 가격을, A석에는 B석에 가까운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유료 관객 비율을 높여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뮤지컬협회도 '5만 원 미만 공연 초대 상품'을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공연계가 당장은 청탁금지법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연계의 공짜 티켓 남발 관행, 거품 낀 티켓 가격 등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다.

작년 '영란 티켓'을 구매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공연을 본 직장인 이 모(32) 씨는 "평소 10만~20만 원을 훌쩍 넘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대학로 연극 가격에 본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티켓 가격이 낮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소형 클래식 기획사 대표는 "안 그래도 어려운 공연계에 청탁금지법이 또 다른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들이 후원의 대가로 과도하게 티켓을 요구하는 문화, 공짜 티켓 소지자들이 객석 대부분을 채우는 풍경은 이번 기회에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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