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반기문 귀국, 정계개편 '핵' 떠오르나…요동치는 대선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링'에 오르면서 정국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탄핵사태를 거치며 지리멸렬해진 범여권에 '유력 주자'가 착지함으로써 야권이 일방적으로 주도해온 대선판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정치권 전체가 '반기문 귀국'이라는 새로운 변수 앞에 초긴장 상태에 접어든 표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며 잔뜩 위축된 보수진영에서는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왕의 귀환' 수준으로 반기는 분위기이고, 거꾸로 탄탄한 대권후보를 갖춘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검증의 칼날을 벼르는 중이다.

이런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반 전 총장은 귀국 일성으로 '화합과 통합'을 제시하면서 기존 대선주자들과는 차별화된 전략적 행보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제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채 10년간 국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최대한 일반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이미 대선 캠프를 가동하고 치고 나간 만큼 반 전 총장의 이러한 낮은 행보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달 말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인 세 불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분간은 특정 정당에 곧바로 몸을 싣기보다는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부각하며 정치권 밖에서 중도·보수를 아우르기 위한 '아웃복싱'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 전 총장이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겠지만 새누리당 충청권과 일부 중도 성향의 수도권·영남 의원이 탈당 후 여기에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이른바 '제3지대 형성론'이다.

단, 반 전 총장의 국민 행보를 위해 시간을 두고 결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기존 대선판을 흔들어 정계개편의 핵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야권 주자가 없는 세력 형성은 단순한 이합집산으로 비칠 뿐 주요 가치로 앞세운 통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와 연대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더불어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를 제외하고 반 전 총장, 안·손 전 대표가 연대하면 일단 '빅텐트'의 주요 기둥이 서게 된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한 차례 후보 통합을 경험했던 안 전 대표는 '자강론'을 앞세우며 반 전 총장과의 연대론에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는 전날 서울시당 개편대회에서 "정치공학적 연대론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불사를 것을 제안한다"면서 "오직 우리의 힘으로 총선의 기적을 만든 정치혁명의 기세로 정권교체할 것을 흔들림 없이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계개편이 본격화 하면 호남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반 전 총장과의 연대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꼭 20년 전 성공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2017년 버전'이다.

이 역시 지역적 조합에 그친다면 정치공학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DJP 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개헌이 핵심 고리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침 '87년 체제'의 30년을 맞는 올해 박 대통령 탄핵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이 면담을 요청할 경우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밝힌 것도 개헌에 대한 공통 관심사 때문이다.

특히 반 전 총장이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통령 임기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을 들고나올 경우 김 전 대표가 호응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구축이 현실정치의 한계를 도외시한 이상에 불과하다는 쪽은 반 전 총장이 기존 정당에 들어가 정면승부를 펼쳐야 승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이 외교관은 오래 했을지 몰라도 정치는 조직과 자금이 필요한 현실"이라면서 "김연아 선수가 리듬체조도 잘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은 보수 진영에 터를 잡은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기존 주자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의 청산 작업을 통해 내부 정리를 진행 중이고, 바른정당은 정책 쇄신에 한창인 만큼 대선이 임박하면 반 전 총장이 들어갈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제3지대이든, 기존 정당 접수든 반 전 총장이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은 검증이다. 특히 반 전 총장의 귀국길에 동생과 조카가 기소된 것은 우연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총재나 고건 전 국무총리는 반 전 총장을 훨씬 뛰어넘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결국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퇴장했다.

또 반 전 총장은 역대 대선에서 등장했던 제3후보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