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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기충신에게 대통령이 책임을 미루면 되나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문화체육부의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구속된 자를 포함하여 무려 18명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장차관 등의 대통령 최측근 고위공직자가 수두룩하고,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등 대통령과 가까운 지인들이 여럿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청와대의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자신은 책임질만한 죄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박대통령측이 제출한 13쪽짜리 의견서에 의하면 국회에서 지목한 13가지의 탄핵소추사유는 합당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4개월간에 밝혀진 검찰 및 특검의 수사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수사대상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혐의도 한 두가지가 아니며 적지 않은 사람이 이미 구속되어 있는 마당에 명백한 증거까지 드러난 사실을 부인하는 박대통령측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상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정호성비서관에 대한 박대통령의 태도이다. 정호성전 전비서관은 20년 가까이 박대통령을 최측근 거리에서 모신사람이고 그야말로 충성을 다 한사람이다. 지금 국정농단사건에 연루되어 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정성을 다하여 박대통령을 모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상대적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다. 국가기밀 유출은 정비서관의 과잉충성이 빚어낸 일이지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호성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를 최서원(최순씨의 개명이후 이름)에게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최측근 부하의 책임에 대하여 상사로서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으로 두 가지 차원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법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부하가 중대한 업무상 범죄를 짓게 되면 상사는 감독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일반적 법리에 저촉되고, 또한 최측근인 문고리 3인방의 한 사람이 40년 지기 최측근 최순실씨에 대한 문서를 유출하는 것을 과연 몰랐겠는가 하는 점이다. 최순실씨가 각 종의 요직인사까지 관여한 점으로 보아 이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윤리적, 도덕적 문제이다. 훌륭한 장수는 전장에서 행한 업무상의 부하책임을 부하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 부하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비록 전쟁에서 패했다고 하더라도 최종책임은 자신에게로 돌린다. 지휘자로서의 통솔책임을 자신이 지고 부하의 책임을 경감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면모이며, 훌륭한 지도자가 지닌 멋이다. 한 때 권좌에 있었지만 현재 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최측근 부하들에게 박대통령이 이런 지도자의 멋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