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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의 비극' 낙태·단종 한센인 국가배상 대법 첫 확정

대법, 국가 상고 기각…낙태 4천만원·단종 3천만원 배상액 인정
다른 한센인 520여명이 낸 5건 소송 결론도 비슷하게 수렴할 듯

'현대사의 비극'인 한센인 단종(斷種·정관 절제)·낙태 조치에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한센인들이 배상을 거부하는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받은 첫 번째 확정판결이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게 4천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게 3천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시행된 수술 등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이므로, 국가는 그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한센인 520여명의 같은 내용의 소송 5건도 비슷한 결과로 수렴할 전망이다.

국내에서 한센인에 대한 낙태·단종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수에서부터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낳은 정책이었다.

소록도에서는 1936년 부부 동거의 조건으로 단종수술을 내걸었다. 소록도뿐 아니라 인천, 익산, 칠곡, 안동 등지에서도 많은 한센인이 천부적 권리를 잃고 뱃속 아이를 떠나보냈다.

당시 피해를 본 한센인들은 2007년 설치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낙태·단종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현대사의 비극'인 한센인 단종·낙태 조치에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온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 대법원에서 한센인권변호단, 한국한센총연합회 관계자들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2.15

그러나 국가가 배상을 거부하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40여명이 6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간 법원은 "한센인의 본질적 욕구와 천부적 권리를 침해한 점이 인정된다"며 단종 피해자에 3천만원, 낙태 피해자에 4천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려왔으나 확정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낙태 수술은 동의·승낙이 없었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해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뤄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한센인 139명의 소송은 2심인 서울고법 민사30부(강영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사법 사상 처음으로 전남 고흥 소록도를 찾아 특별 재판을 연 끝에 배상액을 단종·낙태 모두 2천만원으로 감액했다. 이에 이 소송의 대법원 판단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센인들을 대리한 박영립 한센인권변호단장은 대법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법부가 이제라도 한센인들의 눈물을 닦아줘서 다행"이라며 "입법부에서도 일괄 배상 개정안이 통과돼 한 맺힌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국가가 책임을 다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