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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한말 조선과 21세기 한국의 국제정치환경비교

구한말 조선과 오늘날 우리나라 국제정치적 환경은 너무나 흡사하다. 나라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라가 주변강대국과 세계 열강사이에 끼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결국 일제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만 것이 구한말 조선의 운명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살리는 것보다 자기의 일신보전에 급급한 관리들은 친일파와 친러파, 그리고 청나라 추종파로 갈라져 이리 붙고 저리 붙으면 조선이 살아갈 길이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부평초처럼 떠 다니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 이익을 챙기는 야욕을 숨기면서 간섭의 촉수를 뻗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이 타고르가 말한 것 같이 ‘동방의 떠오르는 등불’이라고 하는 도덕적 가치 때문에 군사를 파견한 것이 아니며. 조선의 안녕을 돕겠다고 하는 자비심 때문에 병력을 보낸 것이 결코 아니었다.

21세기를 접어든지 한참 세월이 지난 오늘날 한국은 다시 이런 시험대에 올라 있다. 조선말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국력을 가진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둘러싼 세 나라는 한국에 대해서 전혀 우호적이지 아니하다. 근래 보기 드문 갈등에 휩싸여 있는 중국과 일본은 말 할 것도 없고, 외교적 표현으로는 우방과 동반자관계를 내세우고 미국조차 적지 않은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국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고 있다.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드배치를 강행한 한국에 대한 중국시진핑의 경제적 보복은 이제 본격화되고 노골적이 되고 있으며, 이제는 군사적 조치까지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속수무책인 정부에 대하여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으며 중국의 이런 보복은 국제사회조차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아예 한국을 외교의 대상으로 생각지도 않고 있다. 탄핵대상이 되어 있는 대통령이나 무기력한 외교담당자들과 얘기할 가치도 없다고 보아 본국으로 소환한 주한대사까지 세 달째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재협상준비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런 주변 3대강국과 한국의 국제관계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영토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 대립이나 갈등과 너무나 유사하다. 사드배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 등 갈등을 푸는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이리 저리 갈라져 구시대적 이념논쟁을 벌이는 것조차 어떻게 그렇게 흡사하다는 말인가.
사드배치문제, 위안부 보상문제, 트럼프정부에 대한 대응문제 등은 돌이켜 보면 우리정부가 좀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준비하고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문제가 꼬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런 참혹한 외교적, 국제경제적 위기에 봉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엎지르진 물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이 이성적이고 현명한 태도로 지금의 국제관계상의 딜레마를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데 중요한 것은 멸사봉공의 자세와 전문가적 식견이다.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감정의 논리보다 국제정치학적 지식과 이성적 판단으로 외교 통상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줏대 없이 주변 강대국의 논리에 놀아나고 국민들이 편을 갈라 두 쪽으로 쪼개지고 이리 저리 흩어지면 다시 구한말의 망국이라는 비운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