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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대통령, 기자회견다운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이하여 청와대에서 약 65분에 걸쳐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기자 250명 앞에서 ‘각본 없는’기자회견을 한 것이 돋보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미리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참모들이 쓴 답변을 읽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여왔다. 이런 기자회견을 보다 보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이 사전 각본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국가원수가 자유롭게 답변하는 생생한 장면과 비교되어 뒤떨어진 정치행태에 답답한 감을 떨칠 수 없었다. 미리 받은 질문을 참모들이 작성한 답변을 읽는다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기자회견장에 서있는 국가원수의 생각이나 답변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채색된 그림과 같으며 그런 형식은 답변하는 사람이 국정을 완전하게 꿰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심도 사게 된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에서 문대통령은 선진국에 진행되는 기자회견과 같이 사전각본과 준비된 원고에 의하지 않고 즉석 질문에 즉석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이런 진행방식을 두고 어떤 기자는 대통령에게 “떨리지 않으세요”라고 농담섞인 질문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250명 내외신 기자들이 오케스트라형식의 좌석에 앉아있는 앞에서 기자들이 임의대로 쏟아내는 질문을 받아내야 하는 질문에 문대통령이 긴장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에 대하여 전반적인 이해와 정책에 대한 소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지난 100일을 “국가역할을 다시 정립하고자 했다”한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는 여야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국정철학을 솔직히 밝혀 국정운영 예측을 가능케 했다”고 하면서 나아가 추미애대표는 “개방되고 열린 소통하는 대통령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며 찬사를 보낸 반면에 야당은 “국정호보쇼, 각본 없는 게 아니라 대안이 없다”고 평가절하 하였다. 야3당의 구체적 비판은 더욱 가혹하다. 한국당은 기자회견이 “자화자찬 보여주기 소동”, 바른정당은 “국민이 궁금한 것은 비켜갔다”, 국민의 당은 “잘못은 빼놓고 공만 자랑했다”고 혹평을 한 것이다.

이런 야당의 비판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며 일면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묘사될 수 있듯이 기자회견의 내용에 대하여서도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더욱이 사전 정해진 각본 없이 현장에서 불쑥 나타나는 질문에 대통령이 완벽한 답변을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 점은 질문권을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질문권이 편중되어 기자들의 항의가 속출한 것과 각료임명 등에 드러난 인사문제 등에 솔직히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확대를 위하여 국민공론을 전제로 추가증세도 검토하고 더 강력한 부동산정책도 준비하고 있다는 발표는 국민들의 주요정책에 의구심을 풀어주기에 충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번 기자회견은 그 내용의 적정성을 떠나서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진행된 것만으로도 한국정치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국민들이 대통령의 국정관리능력과 의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한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우리나라 대통령 기자회견은 절차와 내용을 더욱 충실히 하도록 하되 기본적 형식은 이렇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