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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투자 어떻게 막나"…이재용 없는 삼성의 '경영 딜레마'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실형 선고로 삼성그룹 '총수 공백'이 사실상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주요 계열사의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항소심 심리가 내년 2월 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부작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지난 2월 말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식 선언한 이후 이른바 '수요 사장단 회의'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소통 창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업종별 현안이 있을 때 몇몇 CEO가 회동하거나 개인적 친분으로 만나는 경우는 있지만 전체 사장단이 모여 '그룹 살림'을 논의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60여 개에 달하는 그룹 계열사들은 경영 전략을 사실상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사업 분야가 겹치는 일부 계열사는 '중복투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른바 '미래먹거리'로 불리는 신수종 사업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업 분야의 확장을 염두에 둔다.

그룹 차원의 조율이 없다는 것은 이런 신수종 사업 추진에서 계열사별 대형 투자가 겹칠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 빅데이터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사업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IT 관련 계열사가 대부분 신규 투자를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임원은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M&A)에 공격적으로 나서자니 오너의 전략적인 비전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데다 다른 계열사와의 중복투자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그렇다고 날로 거세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마냥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실정"이라면서 "입체적, 종합적 판단에 한계가 있는 그룹 계열사 CEO들은 그야말로 '경영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임원은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기가 최소한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면서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심 최대 구속기간(6개월)인 내년 2월 말까지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 결과에 따라 구치소 생활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날 때까지만이라도 한시적으로 옛 미전실과 비슷한 임시 조직이 만들어지거나, 정치권 식의 '비상대책위원장' 외부 영입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삼성 내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삼성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려있고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상황에서 이런 대응은 자칫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실상 '총수 대행' 역할을 맡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늘 사내망에 올린 글은 사실상 계열사 임직원 모두를 향한 메시지"라면서 "계열사들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한탄도 섞여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날 삼성전자 사내망에 올린 '임직원께 드리는 글'에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