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동일노동·동일임금 법제화, 일본처럼 충분히 논의해야"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려면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만 일본과 우리나라는 경제적 상황이나 임금체계, 고용형태 등이 다른 만큼 제도화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정부 임금정책 진단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동일노동·동일임금 가이드라인안'을 제시해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부당한 처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했다.

현재 쟁점 사항들에 관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 중이며, 이를 토대로 향후 입법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일본은 저출산·초고령화 추세로 인해 지난해 이미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해소해 노동공급을 늘리려 했다"며 "이를 위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도입이 당장은 어렵다고 판단해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나 양국의 제도적·환경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동일한 근속연수의 경우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는데, 이는 지난 30년간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기본급 구성에서 근속연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췄기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 임금체계는 기본급의 대부분이 호봉제로 구성돼있어 일본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호봉제 임금체계의 개편 대안으로 직무급 임금체계가 떠오르고 있으나 협소한 노동시장 규모, 기업별 노동조합 환경 등의 국내 여건에서는 전환하기 어렵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경우 개별 기업 특성에 부합하는 다양한 임금체계 개편 선택지를 활용하는 반면 우리는 직무급 임금체계만을 대안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언급했다.

아울러 일본이 이미 2000년 고령사회,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과 달리 우리는 올해 고령사회로 들어서는 단계인 만큼 2000년 직후 일본의 노동시장 상황을 참고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각계 의견을 오랜 기간 수렴한 일본도 현재 입법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리는 입법화 목적이 정말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대우를 해소하려는 것인지, 현 제도 하에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한지부터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장시간 근로의 원인으로 지목돼 정부가 손보기로 한 포괄임금제 관련 내용도 다뤄졌다. 정부는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승철 변호사는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은 실효성이 크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규제만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근로자는 초과근무를 한 만큼 임금을 받고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적정으로 유지해 퇴근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근무 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커지고 퇴근 후 집에서 잔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2010년 이후 대법원 판례를 보면 포괄임금제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해 과거보다 적용 범위가 상당히 축소됐다"며 "이미 법원을 통해 포괄임금제 규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별도의 정부 지침이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포괄임금제는 사업장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실무적 관행을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실체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폐지하기보다는 4차 산업시대에 맞는 형태로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