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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기금 출범 시 연체 없는 저소득층·빚도 못 얻는 극빈자 무혜택

[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새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으로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은 6개월 이상 1억 원 이하를 연체한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원금을 50~70% 탕감해주고 나머지는 장기 분할상환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저소득층 300만 가구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 가구의 상당수는 성실히 빚을 갚아와 연체가 없는 저소득층이거나 빚도 못 얻는 극빈층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크게 일 것으로 보인다.

13일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2 가계금융복지조사' 세부자료를 분석해 최근 내놓은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수를 고려한 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의 50%가 안 되는 저소득층은 지난해 기준으로 412만1000가구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금융대출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구는 156만4000가구이며, 여기서 최근 1년간 연체 경험이 있는 가구는 49만7000가구다.

연체가 있는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월평균 73만8000원으로 원리금상환액 78만2000원을 다 갚을 수 없는 수준이다. 무상환비율(DSR·원리금/소득)로 치면 106.0%에 달한다.

DSR 비율이 40%가 넘으면 고위험가구로 분류되는데, 이들 가운데 여러 금융기관에서 1억원 이하를 대출 받은 뒤 6개월 이상 갚지 못해 연체 상태에 있는 가구가 행복기금의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출을 받은 뒤 연체하지 않고 이자를 꼬박 꼬박 내온 나머지 106만7000가구는 연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들의 가처분소득은 72만3000원, 원리금 상환액은 71만8000원으로, DSR비율이 99.3%이어서 연체 가구와 큰 차이가 없고, 외줄에서 한 번만 '삐끗'하면 채무 불이행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다.

빚을 장기간 갚지 않는 사람은 원리금을 탕감받지만 똑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은 무거운 채무의 짐을 지면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채무자의 상환 의욕을 꺾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국민행복기금 지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연체를 해야하는 상황을 초래해, 행복기금이 오히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저소득층 412만1000가구 가운데 대출이 없는 255만7000가구도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기에는 소득은 낮지만 재무상황이 건실해 빚을 내지 않는 가구도 소수 있기는 하지만,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쳐 생활비를 위해 대출이 필요한데도 소득과 신용수준이 낮고 재무상태가 부실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극빈층 가구(저소득층 255만7000가구 204만4000가구)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대출이 없는 저소득층 가구는 월 가처분소득이 평균 57만원, 보유자산은 9802만1000원에 불과해 대출이 있는 저소득층 가구(69만7000원, 2억1661만원)보다 소득과 자산이 모두 적어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빚조차 얻지 못할 정도로 최악의 생활고를 겪고 있는 계층이지만 부채가 없기 때문에 국민행복기금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돼 역시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국민행복기금 시행에 앞서 저소득층의 생계대책을 우선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형평성 문제가 대두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