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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무연산 논란.."연산은 위스키 품질 판단의 척도"

숙성 연수를 표기하지 않은 '무연산'(No age statement) 위스키에 대한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병에 새겨진 12년, 17년, 21년 등의 숫자에 대한 얘기인 것이다.

20일 위스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와 관련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촛점은 무연산 위스키가 연산 위스키로 오인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연산 위스키가 연산 위스키와 비슷한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는 점이다.

무연산 위스키가 연산 위스키로 오인되고 있다는 것은 연산 표시는 없는데 제품명으로 "이건 12년이고, 저건 17년일 것이다"라고 소비자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든블루의 사피루스와 다이아몬드는 숙성 연수가 표기 돼 있지 않은 무연산 위스키다.




▲골든블루 다이아몬드와 사피루스
▲골든블루 다이아몬드와 사피루스

골든블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연산 저도수 위스키를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에 대해 연산 표시가 없는 무연산 임에도 소비자들은 사피루스를 12년, 다이아몬드를 17년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국내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위스키를 12년으로, 슈퍼 프리미엄 위스키를 17년으로 인식하고 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스카치 블루 17년산이 4만4500원에 팔리고 있고 무연산 저도수 골든블루 다이아몬드가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모습.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스카치 블루 17년산이 4만4500원에 팔리고 있고 무연산 저도수 골든블루 다이아몬드가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모습.

더 큰 문제는 무연산 위스키가 연산 표시가 있는 위스키와 동일한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는 부분이다. 스카치 블루 17년산이 4만4500원에 팔리고 있고 무연산 저도수 골든블루 다이아몬드가 동일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무연산 위스키인 '임페리얼 네온'의 출고가를 기준으로 보면 동급의 무연산 위스키인 골든블루의 가격이 얼마나 더 높은지 알 수 있다.

40도인 임페리얼 네온의 출고가는 2만2385원이다. 그러나 이보다 도수가 낮은 36.5도인 골든블루의 사피루스는 오히려 2만6334원으로 더 비싸다. 또 같은 도수의 골든블루 다이아몬드는 출고가가 4만62원으로 임페리얼 네온의 약 2배 가격이다.

여기에서 의구심이 나오는 것이다. '도수가 더 낮은 골든블루 사피루스가 임페리얼 네온보다 더 비싼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것이고, 또 '같은 도수의 골든블루 사피루스와 다이아몬드의 출고가가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또한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보통 도수가 낮아지면 일반적으로 출고가는 저렴하기 마련인데, 골든블루는 이와 정반대다. 골든블루는 이와 관련한 지적에 대해 "구체적 원액이나 블렌딩 비율은 영업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답을 피한 것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 제일 하단의 가격표는 (왼쪽부터) 2만5500원, 2만4680원, 3만1290원, 4만4500원, 3만6000원이라고 표시 돼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 사진 상단의 가격표는 (왼쪽부터) 2만4150원, 2만8900원, 2만9300원, 4만4000원이라고 적혀있고 제일 하단의 가격표는 (왼쪽부터) 2만5500원, 2만4680원, 3만1290원, 4만4500원, 3만6000원이라고 표시 돼 있다.

연산이라는 것은 위스키 품질과 숙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더 좋은 위스키를 원할 때 연산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또 다른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숙성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가장하는 방법으로 첨가제를 사용하거나(유사 위스키: 위스키에 향을 첨가한 제품) 숙성 연산을 표기하지 않고(무연산 위스키) 판매되는 제품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솔잎 추출물이나 무화과향 또는 석류향 등을 첨가한 기타 주류 제품들은 원액 100% 위스키와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같은 위스키로 오인하고 음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무연산 위스키는 어느 정도 숙성 기간을 거친 위스키 원액인지 알 수 없는데다, 가격도 연산 제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소비자를 기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무연산 위스키 제조사들은 숙성 연수 보다는 제품 브랜드를 강조하기 위해 연산을 표기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 다르다는 설명이 나온다. 위스키 한 전문가는 "위스키 원액은 3년 이상만 숙성하면 위스키로 분류될 수 있다. 숙성 연수에 따라 원액의 원가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무연산으로 하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숙성 연산이 낮은 위스키 원액을 섞게 된다. 그렇게 되면 원가 하락 요인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블루는 무연산 위스키를 연산 위스키와 비슷한 가격대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골든블루의 제품이 처음부터 연산 표시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골든블루 사피루스의 경우 지난 2012년 11월 22일 골든블루 12년산에서 무연산으로 제품을 리뉴얼했고, 골든블루 다이아몬드는 지난 2014년 5월 7일, 역시 골든블루 17년산에서 무연산으로 제품 리뉴얼을 단행했다.

연산이라는 것은 가치를 나타내준다. 고급 술에서 숙성이라는 것은 품질을 향상시키는 최적의 기술이다. 위스키의 최종 특징을 결정 짓는 가장 큰 요소는 숙성과 숙성 시간이다. 연산은 위스키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더 좋은 위스키를 원할 때 당연히 연산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한국 위스키 시장에서 무연산이 범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랜 숙성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유사 위스키나 무연산 제품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연산 제품은 연산 제품에 비해 그리 오랜 숙성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그린자켓'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그린자켓'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WGS코리아) 김일주 대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WGS코리아는 지난 4월 저도수 위스키인 '그린자켓'을 출시했다. 그린자켓은 골든블루와는 달리 12년, 17년 등 숙성 연산을 표시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09년 골든블루 대표로서 골든블루를 개발, 출시한 바 있다.

그는 "와인은 빈티지(vintage)로, 위스키는 에이징(aging)으로 마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연산에 대한 언급인 것이다. 김 대표는 "연산이 없는 제품도 좋지만, 같은 가격대라면 숙성 연산이 명확히 표기된 위스키가 더 좋다"고 밝힌 바 있다.

가까운 일본의 청주를 보면, 청주와 합성청주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의 합성청주는 제품 전면 라벨에 합성청주라고 표기 돼 있다는 점이다. 즉, 소비자들이 합성청주인 줄 알고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 중심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며 이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위스키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제품의 전면 라벨에 '무연산', '기타 주류' 표기를 의무화 하도록 관련 규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적 방법의 제조와 숙성, 또 원액에 대한 연산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마케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