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변화하는 이란...제재 1년 맞은 테헤란 풍경

이란 테헤란 북부의 호화쇼핑몰 팔라디움몰에서 4일(현지시간) 일본 닛산의 중형차 홍보행사가 열렸다. 이란은 수입차에 최고 55%의 관세와 각종 비용을 부과해 국내 판매가격이 원래 가격보다 배 정도 높지만 최근 부유층을 중심으로 수입차 판매가 늘어나는 추세다. 2016.11.5

제재해제된지 1년을 맞은 이란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경제활동에 대한 족쇄가 풀어지면서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생필품의 종류가 많아졌고 영어 능통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항암제 구하기 수워졌고 영어 잘하면 좋은 대접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둔 모르테자(30)씨는 누구보다 제재해제 뒤 변화를 직접 느끼는 테헤란 시민 중 하나다.

제재가 풀린 지난해 1월 전까지 그는 병원에서 처방한 항암제를 구하려고 테헤란 남부 의약품 암거래 시장을 전전해야 했다고 한다.

약국과 같은 정상적인 경로로는 항암제를 구하기 무척 어려웠던 탓이다.

모르테자 씨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암시장에서는 가짜 약이 많아 불안했다"며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제재가 풀린 뒤 유럽에서 수입된 항암제를 구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12년 서방의 경제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란엔 의약품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의약품은 인도주의적 품목으로 분류돼 제재 대상 품목으로 지정된 적은 없지만 금융 제재로 자금 거래가 차단되자 유럽과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가 대부분 이란과 거래를 꺼린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란 리알화 가치가 3분의 1로 폭락해 수입 의약품의 국내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란 국민이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테헤란 대학에 다니는 니루파(21) 씨는 졸업 뒤 취업을 위해 영어에 집중하고 있다.

니루파 씨는 "제재가 풀린 뒤 외국 기업이 테헤란에 앞다퉈 진출했다"면서 "이란은 젊은 층의 취업난이 심각한데 이제 영어를 잘하면 외국 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도 지난해 1월 제재 해제 뒤 테헤란 지사를 속속 설립하면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세종학당과 테헤란대학교 한국어 강좌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니루파 씨는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은 졸업하기 전에 직장을 구하기도 한다"며 "예전엔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영어만 잘해도 월급을 배 가까이 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대학생 알리(23) 씨는 "영어를 잘하는 이들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란어 대신 영어로 주문하면서 영어 실력을 뽐내려고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란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은 11% 정도다. 특히 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20∼30대 젊은 층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란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회사원 야샤르(39) 씨는 "이란 서민에겐 너무 비싸긴 하지만 외국인이 테헤란에 많이 오면서 거리에 외제 차가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한국차와 일본차가 인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란 경제 상황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이란 리알화 가치는 지난 1년간 안정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뒤 15% 정도 떨어졌다.

핵합의에 부정적인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서 자칫 제재가 원상 복귀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테헤란 미르다마드 거리의 한 환전상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달러화 대비 리알화 환율은 올랐지만 제재 시절과 같이 달러화가 부족하지는 않다"며 "제재가 풀리기 전만 해도 환전해 줄 달러화가 바닥나는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테헤란 북부 타즈리시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모하마드(54) 씨는 "제재해제로 변화는 있지만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것 같다"며 "제재가 부과될 때는 하루아침에 영향을 느꼈지만, 다들 제재가 풀린 효과를 서민이 직접 느끼려면 5년은 더 걸릴 거라고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여객기 들어오자 감격...38년만에 새 여객기

넓은 국토를 가진 이란에서 항공기는 주요한 이동수단 중 하나이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서방과 관계가 불편해지자, 전투기 기술과 연결되는 민항기의 이란 판매가 금지되자 여객기 수입 길이 막혀 그동안 노후 기종들이 이란 항공 교통편을 책임져왔다.

항공기를 겨우 들여온다 해도 제재 탓에 외국의 대리 회사를 통해 중고 여객기를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항공 인프라는 열약할 수 밖에 없는데 이란 민항기 250대 중 88대가 고장 났고 이란 국적 항공사 이란항공 소속 여객기 43대의 기령은 평균 26년 정도로 알려졌다.

여객기 사고는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이란 항공사는 서방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부품이라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2시46분.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 활주로에서 모인 100여명의 내외신 취재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는데 38년만에 새로운 여객기가 공항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던 이란항공의 한 직원은 기자에게 "실제로 에어버스 새 비행기를 보다니 꿈만 같다"며 "미국이 방해해 못 오는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미국 정부는 에어버스의 부품 중 10% 정도가 미국산이라면서 제재 대상인지 유권해석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에서야 이란에 대한 판매를 허가했다.

새 여객기의 이란인 파일럿은 격납고로 운전해 오면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란 국기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한껏 기쁨을 표시했다.

이란항공은 에어버스와 A320(A321 포함) 46대, A330 38대, A350-XWB 16대 등 100대를 구매 또는 장기 임대 뒤 소유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180억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이란은 제재 해제와 함께 낡은 민항기를 교체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400∼500대를 주문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에어버스의 새 여객기 1대가 12일 (현지시간) 프랑스 툴르즈를 이륙해 이날 오후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서방에서 제작된 새 여객기가 이란에 인도된 것은 서방과 관계가 불편해진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도착한 여객기는 189석 규모의 중거리용 A321 기종이다. 2017.1.12

우리 기업들...“이란, 파도는 높지만 블루오션”

지난해 1월 16일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풀렸다는 '총성'이 울리자 한국 기업도 앞다퉈 이란으로 향했는데 중동에서 한국 기업의 주 무대였던 걸프 지역이 저유가로 각종 사업이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되면서 베일에 싸였던 이란이 제재 해제와 함께 말 그대로 '블루오션'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망한 것으로 점쳐졌던 건설·토건 회사뿐 아니라 상사, 금융, 에너지 등 각 분야의 한국 기업이 새로 열린 이란 시장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테헤란을 달려갔다.

그러나 꼭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업이 받아든 성적표는 냉정했는데 한국과 이란의 교역량을 살펴보면 작년 1∼11월까지 수출은 33억2천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반면 이란으로부터 수입은 40억5천만 달러를 기록해 76.8% 늘었다.

제재 해제 이전인 2015년 한국의 대이란 무역은 13억6천만 달러 흑자였지만 올해는 7억 달러 안팎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이는 제재 해제로 이란에서 들여오는 원유와 원자재는 크게 늘었지만, 한국의 대이란 주 수출 품목인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등의 수출은 정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의 정상 방문 시 '42조 원 대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고 홍보됐지만, 실제 성사된 사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그만큼 제재 해제의 효과가 이란 내수까지 본격적으로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다만, 월별 집계를 보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의 감소세가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모 종합상사 테헤란 지사장은 "제재 해제 효과가 빠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며 "중동 최대의 인구와 자원을 가진 블루오션임은 확실하지만 넘어야 할 파도가 그만큼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광업에도 이란은 중요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중국 등 일부 국가에 치우친 방한 관광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공사는 무슬림 관광객 110만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17억 인구의 무슬림 관광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무슬림 국가에서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함께 이란 테헤란에 새로 지사를 연다.

이란 테헤란 밀라드타워 전시장에서 9월27일(현지시간)부터 10월2일까지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선 한국 전통의상 입기, 서예, 다도 등 다양한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성황을 이뤘다. 2016.10.3

한계는 있지만...밝아지는 이란 정세

이란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경제적으로 볼 때 여전히 밝은 곳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에샤크 자한기리 이란 수석부통령은 올해(이란력으로 2016년 3월20일∼2017년 3월20일) 석유(가스콘덴세이트 포함) 수출과 관련 "올해 말까지 석유 수출로 얻는 수입이 41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제재 해제의 효과로 석유 수출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지표에서도 고질절 문제인 물가 불안이 안정되는 모습니다.

이란 정부의 공식 발표를 보면 고질적인 문제였던 물가상승률도 7.5%(지난해 10월 현재)를 기록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원유 수출 증가에 힘입어 6.6%로 예측돼 정부의 목표치(5%)를 넘어섰다.

이란의 상반기 경제 지표와 관련, 지난달 발리올라 세이프 이란중앙은행 총재는 올해 상반기 GDP 성장률 잠정치가 7.4%라고 말했다.

이란중앙은행은 건설 분야를 제외하고 전 분야에서 '양'(+)의 성장률을 기록했다면서, 이는 제재 해제로 재개된 원유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성향이 강한만큼 제재가 풀렸다고 해서 외국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라는 게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평가다.

이란의 불확실한 조세 제도도 새로 발을 디딘 한국 기업엔 '미스터리' 수준이다.

국내 모 건설사 테헤란 지사장은 "이란은 법인세, 개인 소득세가 높은 편이기도 하지만 고세율보다 까다로운 것은 과세 액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다른 기업의 사례를 전혀 참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란 정부의 경제 정책 원칙인 '저항 경제'라는 점도 넘어야 할 장애물인데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완제품에 대한 관세장벽을 더 높이고 있는 데다, 외국 회사가 이란 현지 기업과 합작하도록 해 자국산 부품을 최대한 많이 쓰고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을 엄격히 지키도록 한다.

국내 모 제조업체 테헤란 지사장은 "이란이 핵 협상을 타결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난을 해결하려고 원유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며 "마치 두바이처럼 외국에 자국 경제를 개방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란 개혁.중도파의 거물급 정치인인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의 장례식이 10일(현지시간) 오전 테헤란대학교과 일대 거리에서 열렸다. 그는 8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지지자들이 사진을 들고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 2017.1.10

트럼프 정권 출범과 자국 내 보수·강경파는 향후 변수

최근에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협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기간 버락 오바마 정권의 업적 중 하나인 이란 핵합의가 '최악의 협상'이라면서 엄밀히 다시 살펴보고 수정 또는 폐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때문에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장 겸 부통령은 이란 국영방송에 출연, 새로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핵협상을 위반하면 즉각 대응할 준비가 됐다"며 "트럼프가 핵합의안을 찢어버린다면 이란은 핵합의 이전 상황으로 즉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내 강경파도 변수인데 최근 거물급 정치인이자 중도·개혁성향의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라프산자니는 이란 핵협상을 추진한 중도·개혁 성향의 현 정부에게 있어 이란 내 보수강경파의 공세를 막아낼 방패 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서거는 이란 정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013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의 당선에는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끌어모은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의 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가 서거한 이후인 오는 5월 재선에 도전하는 중도·개혁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 핵협상에 있어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 뿐 아니라 자국 내 반대파를 설득하는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거물 정치인인 라프산자니는 이란 최고권력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만큼 협상 타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란은 핵 합의안(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따라 대(對) 이란 제재가 해제된 지 1년을 하루 앞둔 15일(현지시간) 정부 교체를 앞둔 미국에 핵 합의를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란은 트럼프 당선인의 핵 협상 비판에 대해 미국과 양자 간 합의가 아니라 주요 국가 6개국이 동시에 서명한 다자간 합의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보증했다면서 일방으로 파기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