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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의견서와 대통령의 품격

박대통령은 지난 25일 취임4주년을 맞았으니 상당한 기간 이 나라 대통령으로 재직한 셈이다. 그런 대통령이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였다. 본래 스스로 헌재에 출석하는 것을 기대하였으나 자신의 의견서를 변호사가 대신 낭독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을 앞두고 자신의 해명과 소견을 마지막으로 재판소와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되는 이 의견서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국민이 선출하여 4년이나 넘게 이 나라의 최고통치자로 있는 사람이 마지막 의견에 넣었으면 좋았을 몇 가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격과 위신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다음 몇 가지가 의견서에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다.

첫째, 박대통령은 의견서에서 “저는 정치인으로서 지켜야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 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대 국민담화에서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한다고 해 놓고 어느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의 여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헌재의 출석도 기피하였다.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먼저 있어야 했다.

둘째, 국정문란과 사회혼란, 특히 국민 간 대립갈등을 야기한 일차적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고 더 이상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자제를 당부하는 언명이 있어야 했다. 정치지도자, 특히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 지금 도를 넘는 국민분열과 사회갈등은 특정정치인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직무는 정지되어 있으나 자신문제로 야기되고 있는 대립과 갈등을 국가발전과 사회안정을 위해 중지해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있어야 했다.

셋째, 지금 구속 또는 불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모든 공직자와 재계총수 및 측근인사들에게도 위로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대통령의 국정관리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얽힌 불법부당행위로 고생을 하고 있으며 또한 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며 관리감독자로서의 책임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나아가 권력 가까이 위치하다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도 부덕의소치로 이런 사태가 발생한데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넷째,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을 표시하였어야 한다. 박대통령은 박정희대통령의 후광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국건설에 진력을 다하다 비명에 간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애통함과 아쉬움이 오늘날 박대통령을 낳은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박대통령은 지금 이 나라 조국근대화에 몸 바친 위대한 지도자인 부친의 업적과 명예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하였다. 혹자는 박근혜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정치를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였다.

삼국지를 보면 장수는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하여서도 비굴하지 않으며 자신이 지키는 나라를 위하여서나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서는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멋있는 퇴장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진정 박대통령의 업적과 명예를 지켜주려고 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