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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협치(governance)의 성공조건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라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섯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나름대로 선거공약과 그럴듯한 공공정책을 내어 놓으며 득표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2강 3약체제로 사실상의 경쟁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로 좁혀져 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다음 달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되던 현재의 정당구조로 보아 여소야대체제가 불가피하다. 어떤 정당도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른바 협치를 통하여 국정을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비록 대통령에게 절대적 권한이 부여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은 국회에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통치체제에서처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정을 독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후보도 인물의 고른 등용을 통한 협력을 얘기하고 안철수후보는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협치, 즉 거버넌스(governance)는 무엇이고 왜 오늘날 이것이 강조되는가? 협치는 ‘협력에 의한 통치’이다. 정권을 잡은 권력 엘리트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여러 개인과 집단들이 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 참여하여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협치이다. 협치는 통치방식이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인적자원을 어렵고 복잡한 정책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서구 선진국에서는 근래 협치가 중앙정치나 지방행정에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협치가 좋은 의미를 가진 만큼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협치가 기대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자면 적어도 다음 몇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공권력은 공유 되는 것이지 한 두 사람이나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제군주체제나 독재정치 아래서 협치는 존재할 수 없다. 패권주의나 파당의 독주가 이루어지면 협치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둘째, 협상과 타협, 그리고 양보의 미덕이 정치과정에 살아 있어야 한다.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독선과 오만이 지배하는 리더십을 가진 정치구조아래서는 협치가 살아날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살펴보면 일당독재나 일방적 지배가 오랫동안 정치현장에서 득세한 반면에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협상과 타협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셋째,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정치의 중심으로 여야는 물론 모든 국민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인정되고 있어야 한다. 협치과정에 나타나는 경쟁과 갈등, 그리고 타협과 양보는 이를 기준으로 비로소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만한 협치과정에서는 구태의연한 정경유착이나 권력형 부정부패는 단호히 배격되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후보로 나온 사람들은 입으로만 협치와 협력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런 협치의 성공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나아가 유권자인 국민들은 후보자들의 언행이나 자질에 비추어 보아 누가 이런 협치의 성공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지 면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