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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블라인드채용’ 제도의 앞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는 인력을 모집하는 과정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취업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청년백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취업제도의 도입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학력중시와, 지역주의가 노동시장에서 보편화되어 있어서 이런 관행과 폐습을 단절시키는 것이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 생각되어 온 실정을 고려하면 대선을 계기로 이런 정책이슈가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던 중에 지난 5일 드디어 문대통령이 제시한 ‘블라인드 채용’의 정책실현을 위한 로드맵이 나왔다. 정부가 ‘평등한 채용, 공정한 과정으로 위한 블라인드채용 추진방안’을 시작한다는 방침을 내어 놓은 것이다. 이번달부터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채용 시에 입사지원서에 학력, 키.체중. 용모 등 신체적 조건, 사진, 출신지역, 가족관계 등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면접과정에서도 면접대상자들의 이와 같은 인적 정보를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올 수 있는 제도적 효과는 바로 존 로울스가 그의 정의론에서 말하는 ‘무지의 베일’을 통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절차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학력이나 지역이 가지는 편견에 의하여 업무수행에 필요한 능력과 실력을 공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위험성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는 헌법상 명기된 평등권 존중정신에도 부합한다.

이번에 도입된 ‘블라인드 채용’은 하반기의 공공기관 인력모집부터 바로 적용된다. 한국전력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농어촌공사, 충남대학교병원 등 2,801명을 모집하는 과정에 이 제도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공무원 공개채용부터 이미 도입된 바 있으며 그다지 무리 없이 제도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별다른 부작용 없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인력모집기관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채용하는 기관들은 스크린절차를 통하여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인력을 채용하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력이나 자질을 측정할 수 있는 자료가 모집과정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수한 기술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위나 사기업의 경우 인적 사항에 관한 좀 더 세밀한 자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적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직종과 기업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1세기 동안의 정치적 실험에서 평등을 금과옥조로 하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능력에 따른 보상과 효율성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정치제도와 정치이념이 실패하듯이 지나치게 경직된 획일적 인사제도는 역기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때 ‘블라인드 채용’의 앞날이 밝게 될 것이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