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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여성 운전 사상 첫 허용…"다음은 남성보호자 폐지"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동안 금지했던 여성의 운전을 사상 처음으로 허용하기로 했다고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이날 칙령을 통해 내년 6월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허용할 것을 명령했다.

이로써 지구 상에서 여성 운전을 금하는 나라는 없어지게 됐다.

이번 조치는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표적인 사우디의 보수적 종교 관습이 종언을 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칙령은 30일 이내에 실행 방안을 제시할 위원회를 구성해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내용을 포함한 교통법규 조항을 내년 6월 24일까지 시행할 것을 명령했다고 현지 국영 SPA통신은 전했다.

살만 국왕은 칙령에서 "여성 운전의 장단점에 대해 종교계의 의견을 넓게 청취한 결과 사회의 안전과 연녕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다"면서 "여성 운전을 허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명문법은 없지만,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 운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국인 여성도 사우디에서는 운전할 수 없었다.

운전한 여성은 체포돼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여성이 남성 의상을 입고 운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에서 여성이 차로 외출하려면 가족 중 남성 보호자(마흐람)나 고용된 기사가 운전을 대신 해야 한다.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관습 탓에 여성의 직장, 학업 등 사회활동이 제약되고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하는 등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는 지적이 나오곤 했다.

사우디는 2015년 처음으로 여성의 선거·피선거권을 허용하는 등 최근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여성의 정치, 사회적 권리를 확대하는 조처를 했지만 여성 운전은 제외됐다.

최근에는 사우디 모하마드 빈살만 제1왕위계승자(왕세자)가 추진하는 사우디의 중장기 사회·경제 개혁 계획 '비전 2030'에 따라 스포츠 경기장에 여성 입장을 허용하기도 했다.

비전 2030은 탈(脫)석유 시대를 대비해 엄격히 제한됐던 여성의 사회활동과 교육 기회를 늘리는 내용이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사우디의 오랜 금기를 깬 이번 조치는 30대 젊은 '실세 왕자'가 강력히 추진하는 중장기 사회·경제 개혁 계획인 비전2030의 파급력과 실행력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권에 대한 인식도 급변하는 상황도 고려된 것으로도 보인다.

이번 여성 운전 허용 발표 직후 사우디 안팎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미 사우디 대사인 칼리드 빈살만 왕자는 이날 칙령 발표 직후 기자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우리의 지도부는 사우디가 현재 젊고, 역동적이고,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실행할 적기라고 본다"고 밝혔다.

2014년 운전하다 체포돼 73일간 구금됐던 사우디 여성운동가 로우자인 알하틀로울은 자신의 트위터에 "신을 찬양하라"면서 운전 허용을 기뻐했다.

2011년부터 여성 운전 허용을 주장해 온 사우디 여성단체 '우먼투드라이브'는 이날 낸 성명에서 "9월26일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가혹한 법이 끝나는 날로 기록됐다"며 "이제 남성 보호자 제도 폐지를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여성 단체들은 1990년부터 공개적으로 여성 운전 허용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지만 활동가가 번번이 체포, 구금됐다.

미국 국무부 역시 이번 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조치"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여성이 외출할 때 남성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는 관습과 공공장소나 직장, 학교, 식당 등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정책이 여전하다. 스포츠 경기장엔 여성 입장이 금지된다.

또 국내외를 여행할 때도 남성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여성의 권리가 매우 제약된 곳이다.

일각에선 여성 운전이 허용되면 혼자 외출을 할 수 있게 돼 남성 보호자 제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