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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국제영화제와 경주 원전올림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부산과 경주에서 국제적 행사가 개최되었다. 국제영화제와 원전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원사업자협회(WANO) 총회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행사는 행사내용의 중요성이나 규모면에서 모두 정부가 적극적 관심을 지닐만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관심은 너무나 비대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 영화제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 나흘째 깜짝 방문하여 “부산영화제를 과거 위상으로 되살리겠다”고 약속하였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행사장을 찾은 문대통령은 영화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영화계 인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하여 이런 거취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이런 접근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은 과거의 정권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하여 문화예술을 이념논쟁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은 것을 생각하면 영화제를 ‘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은 매우 적절한 태도였다고 생각된다. 자유와 창의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 문화 예술이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경주의 원전올림픽이다. 세계 각국의 원전운영사 대표 5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원전사업의 미래와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대규모의 국제행사장 주변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정부요인의 참여가 없었던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행사가 개최되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건물에는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플래카드조차 제대로 걸리지 아니하였다. 보통 이 규모의 중요한 국제회의가 개최되면 학계와 경영계는 물론 정부의 관련 정책담당자가 대거 참여하고 행사장 주변에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행사개시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내 걸리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면 경주의 원전 올림픽 모습이 이렇게 초라하게 변질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부의 탈 원전 정책 때문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 원전정책추진의 일환으로 바로 이 시기에 고리원전 5,6호기의 영구중단을 판가름할 공론위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전올림픽을 부각시키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원전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있고 외국에 수출할 단계에 까지 이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원전관련 국제회의를 이렇게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미 “원전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바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미래지향성, 발전가능성, 그리고 사물에 대한 균형감각과 공정성이다. 독단과 오만, 편견과 과거지향성이 지배하는 지도자에게서는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국의 근대정치사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