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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中- '흔들리는' 美…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줄타기· 대응 고심

apec 정상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인 영향력 감소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향후 외교·안보 전략을 놓고 고민에 빠져들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3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태국가들의 무역 관행을 비난하면서 "언제나 미국을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화합과 안보를 강조하며 위엄을 보이던 역대 대통령과 확연히 다른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모습은 아태 지역에서 날로 그 위상이 흔들리는 미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더구나 APEC 회의에서 큰소리치는 모습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중 정상

필리핀 드라 살레 대학의 리처드 헤이다리안 교수는 "트럼프는 이번 방문에서 중국으로부터 어떠한 중요한 양보도 끌어내지 못했다"며 "이는 아시아 내 '포스트 아메리칸' 질서의 부상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구심점 역할을 강조하려 했지만, 되레 쇠퇴하는 초강대국의 초라한 지도자로 베이징을 떠났다"며 "미국은 더는 역내 '넘버 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세계화는 불가피한 추세이며, 은둔은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역설하며 여유 있고 개방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아시아 각국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 국가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더불어 이 같은 시 주석의 발언은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으로 비쳤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에 아태국가들은 고민에 빠져든 모습이다.

지금껏 아태국가들은 지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으로는 미국,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는 편리한 메커니즘이었다.

하지만 시 주석이 '대국굴기(大國堀起)'를 내세우면서 지역 내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하와이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의 알렉산더 버빙은 "우리는 지금 '파괴적 창조'라고 부를만한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이제 아태국가들은 지역 안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안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을 중심으로 지역 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 맞서야 한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들고나오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이 중심이 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항행의 자유'와 법의 지배,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 등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도카라(중국명 둥랑<洞朗>) 지역에서 중국과 국경분쟁까지 겪었던 인도를 적극적으로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일본이나 인도, 호주처럼 상대적으로 국력이 강한 나라의 축에 끼지 못하는 아세안 국가들에 이 같은 전략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에 밉보여 무역 보복을 당하거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은 이 같은 우려가 기우만은 아님을 나타낸다.

이에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등 동남아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에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베트남도 최근에는 이러한 전략으로 돌아설 조짐을 보인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우리는 선택을 강요당한다"며 "작은 나라가 큰 이웃 나라 옆에서 생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