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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심하는 야당, 여당 같은 야당

정당정치가 발전하려면 여당은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고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여당은 정권의 수호자로서 또는 동반자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어떤 정권에서나 그 역할 과 행태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야당의 기능과 행태는 상당히 다양한 스팩트럼을 보인다. 여당과 정부의 독주를 막고 불합리한 정책결정을 억제하는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강력한 야당에 끌려 다니며 존재감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때로는 여당의 견제를 하는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어느 순간에 여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세로 슬쩍 돌아서기도 한다.

올해 국회의 예산심의과정에 나타난 야당의 역할 유형은 한 마디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먼저 여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지니고 있는 국민의 당이 취한 행태를 보자. 국민의 당은 그동안 공무원 증원에 반대하여 왔다. 그런데 조정된 공무원증원과 최저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예산의 책정을 주장하는 여당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 변심의 배경이 기가 막힌다. 1조나 되는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호남 KTX노선의 무안공항 경유와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구제 개편을 여당으로부터 약속받았다고 한다. 밀실거래의 전형적 정치행태이며 예산이 정당의 정략과 깨끗하지 못한 거래의 밑거름으로 활용된 것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근래 예산심의와 법안심의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도 야당답지 못하다. 공무원이 한 번 증원되면 수십 년 보수와 퇴직금으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의 증원을 반대했다면 야당으로서 어떻게든 정부와 여당의 증원방안을 막아 냈어야 한다. 그런데 모집인원을 약간 줄인 정부안을 슬그머니 수용하여 버렸다. 법인세 인상에 관한 심의과정에 보인 행태는 더욱 한심스럽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는데 문정부는 법인세를 올리려 한다고 자유한국당은 반대의 입장을 취하여 왔다. 그런데 정작 법안의결투표 현장에는 한국당 의원들을 볼 수 없었다. 의원총회를 하느라 의결투표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다. 나태하고 무책임한 소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과거의 온실생활을 한 여당으로서의 껍질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당체제이든 3당구도이든 건강하고 유력한 야당이 존재할 때 정당정치는 조정과 견제를 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보여준 우리 야당들의 의정행태를 보면 이 땅에서 현대적 정당정치가 꽃을 피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겨울에 장미가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