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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양보 없는 후판가 협상…통상압박 속 내수까지 ’흔들‘

철강

국내 철강업계가 선박을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 가격 인상을 유보해달라는 조선업계의 요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연이어 통상압박으로 수출 숨통을 조이는 마당에, 조선사들과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까지 밀린다면 내수시장에서조차 살길을 찾기 어렵다는 절박감에서다.

국내에서 후판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다. 이들 철강사는 매년 상·하반기에 조선사들과 개별적으로 후판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데, 23일 현재 업계에서는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조선사들의 모임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보도자료를 내고 자신들의 경영이 정상화할 때까지 후판 가격 인상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지난 3∼4년간 조선업계 불황을 감안해 후판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왔다는 게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회사별 구체적인 후판 가격이 공개되지는 않고 있으나 업계에선 후판 1t당 약 70만 원 안팎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동안 철광석·석탄·에너지가격 등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팔아 후판 사업부의 적자가 수년째 이어졌다"며 "물에 빠진 고객을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걸 넘어 아예 대신 물에 들어가라는 격"이라고 토로했다.

철강업계가 후판 가격 인상에 강경해진 이유 중 하나는 대외 여건에 있다.

최근 EU가 23개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잠정 발동하는 등 미국에서 촉발된 고관세 통상압박이 확산해 철강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여기에 정부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기조, 건설 등 수요산업 업황 부진, 미국의 자동차 고율관세 여파 등 철강 업황에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이기도 하다.

또 수급 상황을 봐도 후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국은 자국의 내수 호조로 철강재 가격이 올라 수출 물량을 내수시장으로 전환, 한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후판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산 후판 월별 수입량은 약 4만8천600t이었다. 이는 1년 전(약 5만7천t)이나 2년 전(약 16만5천t)과 비교할 때 급감한 수준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도 이제는 제값 받기를 하겠다고 가격을 많이 올렸다"면서 "우리는 폭리를 취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못 보는 수준으로 팔던 판매가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