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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 착수…국회에 동의안 제출키로

정부가 노동자 단결권 보장을 포함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개의 비준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선(先) 비준'에 나선 것으로, 찬반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거센 논쟁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장'에서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며 "결사의 자유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제29호 등 3개 협약에 대해서는 비준과 관련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헌법상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관계 부처와의 협의, 노사 의견수렴 등 관련된 절차를 거쳐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 제29호와 제105호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국제 기준에 맞는 노동권 보장을 위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경영계는 국내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공약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내걸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작년 7월부터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했으나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공익위원 권고안만 발표했다.

이 장관은 "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 개정 및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하겠다"며 "금년 정기국회에서 3개 협약에 대한 비준 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결사의 자유 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지난 4월 15일 발표된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 안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강제노동 협약 제29호의 경우에는 관계 부처 협의 결과, 주요 쟁점인 우리나라의 보충역 제도가 협약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돼 협약 취지를 최대한 반영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부연했다.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29호는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하고 처벌의 위협 아래 행하는 모든 비자발적 노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한국의 보충역 제도가 이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비준 추진 대상에서 제외한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105호는 정치적 견해 표명과 파업 참가 등에 대한 처벌 등 5가지 형태로 부과하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이 이 협약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에 나선 데는 한국에 대한 유럽연합(EU)의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가 통상 마찰로 비화할 수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EU는 한국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작년 12월 FTA 사상 최초로 분쟁 해결 절차 첫 단계인 정부간 협의를 요청했다.

이 장관은 "(EU는) 현재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에 회부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EU와의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 개시와 법 개정 추진 등)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 측에도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이 장관은 "오랜 기간 형성된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많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통해 우리 경제가 당면한 통상 문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자율과 상생의 노사관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