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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투자 발목 잡을 빚 부담…전문가 "부채급증은 일본식 불황 원인“

가계와 기업의 빚(신용)이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불어나면서 경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코로나19 사태로 당장은 민간(가계·기업) 부문의 대출 증가를 감내할 수밖에 없지만, 급격한 신용 증가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부채(신용) 수준 측면에서 증가 속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4월, 5월 통계를 보면 기업 부채 증가 속도(증가액)가 작년 같은 시기의 4배 수준이다. 한마디로 단기간 급증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은행권 기업 대출은 16조원 불었다. 이런 증가 규모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9년 6월 이후 올해 4월(27조9천억원), 3월(18조7천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것일 뿐 아니라, 5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조 연구위원은 "당장 대출로 버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장기적 관점에서는 과거 우리나라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 각각 한국의 기업부채, 미국의 가계부채 증가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며 "지금처럼 민간 부채가 급증하면 위기가 '펑'하고 터지지는 않더라도 일본과 비슷한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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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에서는 '대차대조표 불황'이 나타났었다. 부동산 버블(거품)이 빠지면서 대차대조표상 자산이 확 줄었다. 10억원을 빌려 부동산 샀는데 그 부동산 가격이 5억원이 되면 남은 5억원은 빚으로서 갚아야 했던 것"이라며 "빚이 이렇게 늘면 기업은 투자를, 가계는 소비를 못 해 불황과 저성장 장기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의 부채 증가 속도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것"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코로나19발 경제 타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민간 신용은 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조 연구위원은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만 정부가 신용이 부족한 곳에 돈이 흘러들도록 보증 재원 등을 마련하는데 쓰일 5조원이 포함됐다"며 "이 5조원의 보증 등을 통해 기업이 실제로 빌리는 돈은 10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가 개입한 자금 지원 정책이 순조롭게 잘 진행될수록, 기업·자영업자·가계의 빚은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실제로 3차 추경에는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 주력산업·기업에 대한 135조원의 긴급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할 재원 5조원이 담겼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경제 주체들이 지금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은, 정부나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계속 공급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부실화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당장 망하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만 아니면 괜찮았을 기업과 가계의 부실화를 막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부실의 원인이 코로나19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금은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도산하라고 놔둘 수 없어서 유통성 공급을 어느 정도 해줘야 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쯤에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많이들 우려하듯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정책이건 긍정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있는 것"이라며 "지금 부정적 측면을 가려내기 어렵고, 일단 대출해서 도산을 막아야 한다는 게 컨센서스(합의)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부채 증가가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살고 봐야 하니까 대출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용과도 연결돼있기 때문에 당장 대출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일단 벗어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